역사란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이것은 공감되는 역사는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공감되지 않는 역사는 여전히 낯설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와의 공감은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감정적인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감성적인 사람이다. 감정적이면 오로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자기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공존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반면에 감성적이면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다. 그것은 감정적일 때보다 감성적일 때 훨씬 더 상대의 감정을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 민성욱 박사
우리 인생에서 감성은 인생에 대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깊은 공감을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발현되어야 하는 역사적 감성은 무엇인가?
역사적 감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역사 상자를 말해 보고자 한다. 역사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에 따라서 역사의 콘텐츠(인물, 사건, 문화유산)가 다를 것이다. 역사 상자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고 그 상자를 열 때마다 우리 삶의 새로운 모습들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 삶의 또 다른 모습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 <그림1> 역사상자.

육하원칙, 즉 누가(주체), 언제(시간), 어디서(공간), 무엇을(대상 목적물), 어떻게(방법), 왜(이유) 라는 조합을 통해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이러한 역사 상자는 안의 내용물을 전혀 알 수 없는 블랙박스가 있고, 안의 내용물에 대한 정확한 로직과 내부구조를 알 수 있는 화이트박스가 있다. 역사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때로는 예측불허라는 점에서는 블랙박스이기도 하고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학습한 효과, 그리고 원리와 개념적 이해를 통해 예측 가능한 결과를 보여주는 화이트박스이기도 하다. 사실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역사는 묘미가 있고, 화이트 박스이기 때문에 역사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상자는 입체적이라 뚜껑을 열어 보지 않는 한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역사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통찰력을 기르기 위함도 있다. 역사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눈도 통찰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서의 내용을 읽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자간과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된다. 그 보이지 않는 곳에 사서 편찬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사서 편찬의 목적과 편찬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편찬기준과 원칙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역사 해석이 좀 더 분명해 진다.

예를 들면 요동정벌을 최초로 꿈꾼 여걸, 천추태후의 역사상자를 열어 보면 어떨까?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거나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내용과는 사뭇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기록된 것도, 기록되지 않은 것도 모두 역사이다. 그런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해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록을 왜곡하기도 한다. 패자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 아니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패자가 온전하게 살아 있기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천추태후는 고려 초기, 시대를 이끌었던 핵심 인물이었다. 태후는 왕의 어머니, 즉 목종의 어머니였다. 천추태후는 원래 고려 개국시조인 왕건의 손녀로, 5대 경종의 비였으며, 6대 성종의 동생이며, 7대 목종의 어머니이자 8대 현종의 이모였다. 관계만 보더라도 천추태후의 위상이 짐작이 간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고려시대의 왕족 간의 근친혼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고려사』 천추태후전에 따르면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사통하여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왕위 계승자로 삼으려고 하였다고 한다. 『고려사』를 편찬한 남성 유학자들은 천추태후를 음란하고 위험한 여성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심지어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 또한 "천추태후가 음란하여 김치양과 간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왕이 시초에 막지 못하였다가 아들과 어머니가 모두 재앙을 입었고, 사직이 거의 멸망할 뻔하였다."라고 썼다.
하지만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관계는 사적 애정보다 공적 정치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천추태후는 김치양을 통해 목종의 후원세력을 결집하고자 하였다.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천추태후는 왕태후에 책봉되었고 김치양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였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정치적인 동반자 관계를 이루면서 목종대 정국을 이끌어갔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반란설은 대량원군을 추대하는 세력이 조작한 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목종이 죽고 현종이 즉위함으로써 천추태후는 나쁜 태후의 모습으로 기록되고 평가되었던 것이다. 천추태후는 고려 광종 이후에 도입된 유교의 정치이념에 맞서 전통 사상을 중시하였고 결국 이것이 묘청에 의한 서경천동운동으로 이어진다.
천추태후라는 역사상자를 통해 우리는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전통문화를 중시하여 새로운 고려를 꿈꾸었던 여걸, 천추태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우당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육형제와 집안 가속들이 힘을 모와 서간도로 이주하여 잃어버린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던 이야기이다.

▲ 우당 이회영. <사진=독립기념관>

6형제 중 넷째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 그의 일가는 오성과 한음 중 오성에 해당하는 이항복의 후손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국난을 극복하였던 이항복, 그의 후손이었던 그들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회의를 하였고, 드디어 우당 이회영 선생이 주도하여 집안의 재산을 다 처분하고 그 처분한 재산을 갖고 대일항쟁을 위하여 서간도로 이주하기로 하였다. 대일항쟁 자금으로 쓰기 위하여 전 재산을 처분하고 그것도 모자라 가족은 물론 집안 가솔들을 데리고 척박한 땅, 서간도로 이주 하였던 것이다. 서간도에서 그들은 신흥무관학교 등 많은 학교를 건립하여 수많은 독립군 인재를 양성했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청산리대첩, 봉오동 전투 등에서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대일항쟁 역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우당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들은 평생을 대일항쟁에 헌신하였고, 다섯째인 이시영 선생만 살아 돌아와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우당 이회영 선생 형제들이 처분했던 재산을 되돌려 주려고 하자 이시영 선생은 그것은 이미 나라에 바친 것이니 돌려받을 재산이 아니라고 한 것은 우당 이회영 선생 형제들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6형제 중 5형제는 모두 대일항쟁 끝에 나라의 독립을 보지도 못하고 일제에 맞서 싸우다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우당 이회영 선생과 형제들의 역사상자를 통해 당시 대일항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든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일항쟁을 통해 한 가문의 영광을 실현하고, 가족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랐던 우당 이회영 선생, 그는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고난을 위대함으로 승화시켰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여 진정한 홍익인간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림2> 천추태후의 자주성과 우당 이회영 선생의 대일항쟁의식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세계관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공감과 소통이 중요하다. 공감과 소통을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감성에 집중해야 된다. 역사의 감성, 그것은 무엇인가?
옛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을 해야 지나간 과거의 사실을 통해 진실을 헤아릴 수 있고, 그 진실을 바탕으로 정확한 역사인식이 가능해 진다. 이것을 역사적 감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확한 역사인식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이 함양되어 같은 세상에 살면서 동일한 세계를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역사를 이해해야만 하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인생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 그리고 운이라는 날줄이 합쳐서 직조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의지와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만 놓고 미래를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한다. 우리는 나도 알고 남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 안의 나도 잘 알아야 하지만 내 바깥의 세상도 더 잘 알아야 한다.
세상을 보는 공부, 시대를 읽는 공부를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야 인생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해 진다. 이렇듯 인생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해 지면 인생이 그 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해 지려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역사라는 옷이 날개가 될 수도 있고,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역사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이방인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