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춘천春川의 중도中島에 있었던 종족이름 예맥족濊貊族의 유적지. 조선시대에 예맥족이 세운 나라를 막조선漠朝鮮이라 하였다. 막조선의 왕을 막한漠韓이라 하였다. 막한이 마한馬韓으로 변음이 되었다. 화이華夷는 마한을 래이萊夷라 불렀다. 래이는 산동반도의 동쪽에 있는 래산萊山에서 온 인종이라는 뜻이다. (중도유적지 발굴단 촬영)

여자 관리인이 내가 잠만 자므로 걱정이 되어 내 방에 들어와 나의 동태를 살폈다. 다른 차원으로 나의 혼이 불려갔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눈을 떠 보니, 관리인 여자가 내 앞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푹 잤습니까?”
 
여자 관리인이 물었다.
 
“네, 푹 잤습니다.”
 
나는 관리인 여자와 작별하고 귀신호텔을 나섰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버스가 끊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양주로 가야 하겠다는 열망이 일어났다. 양주로 가려면 경동시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였다. 나는 택시를 타고 경동시장으로 갔다. 버스는 끊어져 없었다. 그렇다면 택시로 그냥 양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운전기사에게 양주로 가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해 주겠다고 승낙하였다.       
 
“양주엔 왜 가시려 합니까?”
“갑자기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그럽니다.”
 
서울의 거리는 밤이 가져다주는 어둠 속에서 퇴폐와 환락의 불빛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러한 도시 곳곳에서 교회의 첨탑들이 시뻘건 불빛을 토해내고 있어서 이상스러운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택시는 총알처럼 달려서 양주에 들어섰다. 나는 보름달 무당의 집 앞에서 택시를 돌려보냈다. 보름달 무당은 내게 문을 열어 주었다. 밤에 본 그녀는 낮에 보았을 때와 달리 귀기를 느끼게 하였다. 신이 와 있는 것 같았다. 
 
“자정이 넘어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잘 오셨어요.”
 
보름달 무당이 그렇게 말하니 다행이라 싶었다. 
“내일 굿을 합니까?”
“네.”
“제가 하늘에 잡혀갔을 때 하늘에서 이곳을 내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때 저를 그곳으로 데리고 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일본 여자지요?”
“그렇습니다. 그 여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왜요?”
“그 여자를 불러주었으면 합니다.”
“이유가 있나요?”
“안중근 의사의 친구를 설득하여 이곳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가능하면 그분의 딸도 데리고 와야 합니다.”
“왜요?”
“소설에 필요한 분들이라 그렇습니다.”
“알았습니다. 방을 드릴 태니까 여기에서 주무시고 내일 굿에 참여하세요. 그러면 제가 유체이탈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는 보름달 무당이 내주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방에서 잤다. 눈을 뜨니 요란스럽게 제금소리, 장구소리, 호적소리가 귀청이 떨어져나가라고 울리고 있었다. 굿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세수하고 굿청으로 나갔다. 하늘이 밝아지더니, 우모가 흰 버팔로를 타고 와서 사뿐히 내려 내 곁으로 왔다. 
 
“내가 조사해보니까 당신이 오래비 클랜 사람들과 같은 혈족이더군요.”
 
우모가 하얀 코트 속에서 말했다.
 
“맥족을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제게 오셨나요?”
“우리의 조상께서 당신을 영계에 모셔오라고 해서 모시러 왔습니다.” 
“흰 바펄로를 타고요?”
“공중을 날아다닌 데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흰 바펄로가 UFO처럼 보였다. 차라리 안창남 비행사가 조종하는 경비행기를 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유는 없었다. 보름달 무당이 나를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는 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문이 열려 있어서 밖에서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보름달 무당은 나를 미국에서 가져온 전기의자에 앉도록 하였다. 
 
“이러다 또 속임수로 영계에 납치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번 경험이 있으므로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앉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전기의자에 앉자, 보름달 무당이 곧 내 눈을 감기더니, 주문을 외웠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국말로 외우는 주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였다. 우모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나를 일으키자 나의 유체가 일어나 우모가 이끄는 대로 흰 바펄로의 등에 올라탔다. 우모가 내 뒤에 앉아서 버팔로가 뛰게 하였다.  
 
“어디로 가나요?”
“맥족貊族의 조상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갑니다.” 
“왜, 그분들이 나를 기다리지요?”
“한국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를 증인으로 채택하여 무엇인가를 물어본답니다. 질문에 대답을 잘 하셔야 할 거예요.”
“무얼 물어보는데요?”
“모르겠어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보니까 그분들이 옛날에 사시던 곳을 레고랜드를 짓는다고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한때 춘분의 기가 시작되었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나는 그곳이 춘천春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파괴를 중단하지 않으면, 아마 큰 재앙이 내리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외국의 다국적기업인 장난감기업이 춘천에 ‘장난감 나라’를 만들겠다고 의암댐 아래쪽에 있는 중도에 진출하여 돈 1천억 원을 투자한다고 보도된 적이 있었다. 춘천시에서 이 회사의 돈을 끌어들여 중도를 테마파크로 개발하겠다고 계약을 다 마쳤다는 데, 재야사학계 쪽에 있는 역사문화 단체들이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협의체를 구성하여 들고 일어났다. 나는 증언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영계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었다.
 
“개발 저지 투쟁 협의회 회장에게 증언을 시키는 것이 순서일 것 같은 데요.”
“그런데 맥족의 조상들이 당신만을 불러 오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그렇다 치고, 우모께서는 왜 이 일에 관련이 된 것입니까?”
“나는 오래비 클랜의 해드 샤먼이 대대로 모셔 온 버펄로의 여신입니다. 오래비 클랜에 사는 인디언들의 조상은 한반도를 떠난 맥족입니다. 이들은 소를 신성시했지요. 한반도에 있는 맥족의 나라 막조선이 한의 침입을 받아 멸망할 때, 대부분 이 고장을 떠나서 알라스카를 거쳐 북 아메리카로 들어가서 미주 대륙에 정착했습니다. 맥족이 이동할 때, 카치나들이 나를 우모로 모시고 갔습니다. 내가 아메리카에 갔을 때, 버펄로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헤드 샤먼이 나를 버펄로의 여신으로 임명하였습니다.”
“한국의 보름달 무당이 오래비 클랜에 갔다가 바팔로의 여신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버펄로 여신은 한 곳에 가서 흰 버펄로 멈추게 하였다. 그곳은 하늘의 초원이라고 할 만큼 드넓은 초원이었다. 나는 이곳이 새로운 행성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재판관, 검찰관, 심문관, 기록관 등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금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진 아주 오래 된 복장을 하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에 이상하게 생간 관들을 쓰고 있는데, 깃털이나 뿔 같은 것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보니, 우두나찰과 마두나찰이 나를 인수하려고 버펄로를 향하여 다가왔 다. 나를 감방에 넣어 데리고 있던 관리인도 나를 맞으러 와 있었다.  
 
“진술을 잘 해야 해. 진술이 잘못되면 맥족의 조상들이 엄청나게 화를 낼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당신을 또 구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 그러면 감옥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관리인의 말을 들으니 검은 구름이 눈앞에 드리우는 느낌이 들었다.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가 이어서 말했다.
 
“무업니까?”
“자네가 말머리를 준 아베라는 자가 아직도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자를 잡아오면 자네를 놓아 줄 거야.”
“아베가 잡혀 올까요?”
“잡혀오지 않으려 하겠지.”
 
아베를 잡아오는 일이 내 능력 밖의 일로 생각되었다. 나는 재판관 앞에 섰다.
 
“맥국의 임금님이시다. 마땅히 절을 하라.”
 
복희伏羲 가문에서 파견 나온 우두나찰이 내게 명령하였다.  
 
“지금 장난감 회사를 불러들여 소꿉장난에 여념이 없는 철부지들이 무엇을 하는지 말하라. 진술은 불편부당해야 하느니라.”
 
재판관이 말하였다. 진술이 잘못되면 잡아넣겠다는 엄포였다.  
 
“각 부족의 조상은 심문하시오.“
 
재판장이 재판장의 앞쪽에 늘어앉은 부족의 대표들에게 질문권을 위임하였다. 
 
“나는 숙신의 왕이다. 한반도에 숙신과 관련이 있는 곳을 어디로 보느냐?”
 
숙신왕이 질문하였다. 숙신은 단국시대 이전부터 요서지방에 있었던 맥족의 땅이었다. 난하의 북쪽에 있었던 맥족의 고대국가였다. 
 
“숙신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맥족이 세운 숙신이나 맥족이 세운 막漠이나 같은 혈족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춘천입니다.”
“춘천을 고대에 무엇이라 불렀느냐?”
“예읍濊邑이라 불렀습니다.”
“예읍이란 무슨 뜻이냐?”
“예족의 국도라라는 뜻입니다.”
“맥족은 왜 빠졌어?”
“요서遼西로 이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이동했어?”
“한무제漢武帝에게 항복하기 위하여 맥족의 왕이 20만 구의 인구를 데리고 떠났다고 한무제의 신하로 막조선을 멸망시킨 팽오彭吳라는 사람의 열전列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멍청한 왕이 누구야?”
“창해역사蒼海力士입니다.” 
“다음은 읍루挹娄의 왕이 질문하시오.”
 
재판장이 말했다. 
 
“나는 숙신의 후예인 읍루왕으로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한반도의 동북쪽에 있었던 읍루와 한반도의 예맥과의 관계를 무엇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가?” 
 
읍루왕이 질문하였다. 
 
“읍루와 예읍이 동계혈족이 세운 국가이므로 예읍에서 읍루와 동족을 찾으면 된다고 봅니다.”
“예읍은 어디를 말하는가?”
“춘천입니다.”
“다음은 물길勿吉(말갈靺鞨)왕이 질문하시오.”
 
재판장이 말하였다. 
 
“나는 고구려의 북쪽에 있었던 옛 숙신의 땅 물길의 왕으로서 묻겠다. 물길과 한반도와의 관계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가?”
“예읍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음은 부여왕이 질문하시오.”
 
재판장이 말했다.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다는 것을 그대도 알 것이다.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맥의 유적지를 춘천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없애버린다면 춘천의 백성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면 되겠는가?” 
“춘천의 조상들이 춘천이 홍수로 멸망할 것을 예언해 놓았습니다. 마땅히 홍수로 쓸어버리면 되리라고 봅니다.”
 
나는 갑자기 화가 나서 말하였다.
 
“좋다. 그대의 진술로 판결을 대신하겠다.”
 
재판관이 말하였다. 나는 재판정에서 물러나왔다. 
 
“각국의 시조들이 그대가 위증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판단할 것이다. 만약에 위증했다고 판단이 되면 지구로 돌아가는 일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