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열차에서 하차한 伊藤博文. 키가 작은 노인이 모자를 벗어 일본인 출영객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나의 원고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 안중근 의사는 어제 중단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침에 우, 조, 유 3사람과 함께 기차정거장으로 나갔어. 
 
“조 씨가 남청열차南淸列車가 서로 바뀌는 정거장이 어디에 있는가 알아보아 주시오.”
 
내가 조도선에게 시켰지. 조도선이 역무원에게 물어 왔어. 
 
“채가구蔡家溝라 합니다.” 
 
나는 장춘에 가지 않고 채가구에서 내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비를 절약하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지. 유동하가 작별했어. 
 
“내 것을 좀 나누어 주겠소.”
 
나는 우덕순에게 실탄 6발을 주었지. 우덕순이 가지고 있는 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부로우닝 권총이었어. 그가 실탄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어. 우편열차는 12시 13분에 채가구에 도착했어. 내가 보니, 그곳이 기차가 교차하는 역이 틀림없었어. 기차는 이곳에서 30분을 정차했어, 이 30분 동안에 기차가 교행하더군. 나는 여비가 부족한데 장춘으로 가느니, 여기에서 이토오를 저격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장춘으로 가기를 단념하고 이곳에서 내렸어. 
 
나는 조도선을 시켜서 이곳에 매일 기차가 몇 차례 운행하느냐고 역무원에게 물어 오도록 시켰지. 눈이 번쩍 떠지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어. 
 
“열차가 매일 3번 내왕하는데, 오늘 밤에 특별열차가 하얼빈을 떠나서 장춘으로 오는데, 일본 대신 이등을 영접하여 태우고 모래 아침 6시에 여기에 닿을 것이라 합니다.”
 
역무원이 묻지 않은 정보를 무심결에 알려주었더군. 이토오의 동선에 대한 확실한 정보였어. 나는 생각에 잠겼어.
 
“모래 아침 6시쯤이면 아직 날이 밝기 전일 것이니, 이등이 반드시 정거장에 내리지 않을 것이다. 또 내려서 시찰한다고 하여도 어둠 속이라 그가 진짜 이등인지 다른 자인지를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등의 모습을 모르는데 어찌 일을 능히 치룰 수 있을 것이냐.”
 
나는 일행과 함께 채가구 역 구내에 있는 음식점에 숙소를 정했어. 하루 밤을 지내고 우덕순에게 말했어.
 
“우리가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요. 첫째는 돈이 부족하고, 둘째는 이등이 여기를 지나갈 터인즉 일을 치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회를 잃어버리면 다시 일을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 동지는 여기서 머물러 내일의 기회를 보아 틈을 기다렸다가 행동하고, 나는 오늘 하얼빈으로 돌아가서 이등을 쏠 것입니다. 내일 우리가 2곳에서 일을 치루면 성공할 것입니다. 만일 우 동지가 성공하지 못하면 내가 성공할 것이요.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우 동지가 꼭 일을 성공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2곳에서 일이 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다시 경비를 마련하여 가진 다음에 새로 상의해서 거사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완전한 방책일 것입니다.”
“그 방법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작별하였지. 나는 이 일이 성공하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어,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야. 우리는 작별했어. 나는 채가구 역을 떠나서 12시경에 하얼빈 역에 도착했어. 역에서 신문을 보니, 이토오가 하얼빈 역에 도착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어. 그러나 이등이 몇 시에 도착하는지 일정이 기사에 나지 않아서 미리 서둘러 일찍부터 이토오를 기다리기로 하였지. 이등에 관한 여러 기록에 따르면, 이토오는 이미 10월 18일 동경 역을 출발하여 18일에는 대련 항에 입항하였어. 21일 그는 일제가 운영하는 남만철도주식회사의 특별열차를 갈아타고 심양에 이르러, 러시아가 운영하는 동청철도회사의 특별귀빈열차로 갈아탔어.    
 
 
 
거사 당일 나는 김백성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양복을 입은 다음에 그 위에 외투를 입고 운동모자를 썼어. 권총을 먼저 입었던 옷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새로 갈아입은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지. 권총엔 실단 8발이 장전되어 있었지. 나는 하늘에 잠깐 이번 일이 성사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7시경에 집을 나갔어. 역 구내에서 장관과 군인들이 이토오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 시간엔 역 구내를 누구나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었어. 나는 끽다점(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셨지. 주변엔 일본사람들이 많았어. 환영객들이 출영을 나왔는데, 꾸준히 모여서 역 구내가 꽉 차버렸지. 아마 3천 명은 되었을 거야. 그들은 내가 일본사람일 것이라고 무심히 보아 넘기는 것 같았어. 나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알고 있는 한인을 아무도 보지 못했어.
 
의장대가 어디에선가 와서 몇 줄로 도열하였어. 군악대도 도열하였어.  
 
- 기록에 따르면, 오늘 이토오를 영접하는 러시아의 장관은 재무상 코코체프였다. 이토오 그는 러시아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러시아로부터 무엇인가 약속을 받아 내거나, 러시아가 청국 만주에 가지고 있는 이권을 빼앗으려고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를 거부할 수 없었다. 
 
이토오가 탄 특별열차가 오전 9시경에 역에 도착했어. 그러자 취주악이 울려퍼졌지. 
 
러시아의 재무상 코코체프가 이토오를 영접하려고 이토오가 탄 열차 칸 안으로 들어갔지. 서로 인사하고 짧은 환담을 하고나서 이토오가 열차에서 나올 때 도열한 군악대에서 주악이 울렸어.
 
병과 병사이의 간격은 2보, 이등과 나와의 거리는 10보 남짓하였어. 나는 도열한 군대 사이에 대기하고 있다가 이등과 코코체프가 나타나자 휜 수염을 기른 자가 모자를 벗어 들고 답례하는 것을 보았어, 그는 체격이 자그마했고, 얼굴이 누런빛을 띠고 있었어. 그가 이등이었어.
 
내가 보기에 아주 가까운 거리로 생각되었어. 나는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앞으로 나가며 쏘았어. 나는 이등이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그의 상박의 안쪽을 겨냥하여 4발이나 쏘았지. 내가 쏜 총탄 3發이 이등에게 명중하였어. 나는 근거리에 있었으므로 느낌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어,
 
그러나 실수로 이등이 아닌 다른 자를 맞추었을 수 있으므로 이어서 나는 남은 실탄 4발을 얼굴이 누런빛을 띠고 있는 다른 자에게도 쏘았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총을 맞은 자가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森泰二郞), 만철(滿鐵) 이사 다나카(田中淸太郞) 등이었지. 그들도 총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어. 
 
나는 순간적으로 이등과 시선이 마주쳤어. 나는 놀라움과 절망감이 나타난 이등의 눈을 보았어. 내게 항복하는 눈이었지. 나는 내가 이등을 이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 순간에 지금까지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느꼈던 불안과 초조는 사라지고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어. 나는 '대한만세'를 외치며 이 거사를 마쳤지.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백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런 일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안중근 의사에게 치하의 말을 해 주었어. 
 
“자네의 이름도 안중근인데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면 체면이 손상될걸.”
 
안중근 의사가 농담하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가요?”
 
▲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있다.
 
나는 설사 체면이 손상된다고 해도 용기가 없어서 실행이 불가능하였다. 이때 일본인 출영객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 군인들이 나를 잡으려고 달려들었지. 
 
군중들 속에서 “이토오 공을 죽인 자가 누구냐? 얼굴을 보자.”하고 다급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어. 그들의 증오심이 나를 향하여 들끓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 러시아 헌병들이 내게 달려들었어. 나는 손에 든 권총을 던져버렸어. 방어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지. 나는 러시아군 헌병분소로 잡혀 들어갔어. 1909년 음력 9월 13일(양력 10월 26일) 상오 9시 30분경에 일어난 일이었어.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를 쏘아 명중시켰으니, 이제 내가 쓰려는 소설의 절반은 완성이 된 셈이었다. 다음에 내가 써야 할 안중근 의사가 고초를 당하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안중근 의사를 어떠한 인물로 그리느냐는 내 손 끝에 달려 있었다.  
 
“이제 좀 쉬지 그러나? 피곤할 텐데.”
“그럴까요?”
 
나는 노트북을 접었다. 그리고 전원을 차단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수고했네.”
“귀신은 피곤하지 않습니까?”
“피곤하지.”
“그래요?”
“자네와 같은 인간들에게 불려 나와서 심문을 받아야 하니까 피곤하다는 것이야.”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기로 하지요. 밤도 깊었고 하니 저도 좀 쉬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런데 어디에 가서 쉬시렵니까?”
“이건 비밀인데...”
“제게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아야 하는 판에.”
“하긴 그렇군.”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귀신을 볼 줄 아는 어떤 여자가 내게 해 준 말이었다. 
 
“당신의 양쪽 어깨에 귀신이 둘이 붙어 있어. 다리엔 무려 3천8백이나 붙어 있어. 업장이야. 업장.”
 
나는 그런 말을 믿지 못하였다. 그러나 귀신이 쿼크 상태로 줄어든다면 3천8백이 아니라 1억이라도 붙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나는 귀신이 3천8백이나 내 몸에 붙어 있다고 해도 무게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자주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7도수가 지나갈 동안 7번 제사에 참예하면 귀신이 도망치게 될 게야.” 나를 부른 여자가 또 말하였다. 
 
나는 잠자리로 가서, 곧 골아 떨어져 깊이 잠들고 말았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때는 다음 날 오후였다. 눈을 뜨니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