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0년 12월 이회영, 이시영 등 6형제를 시작으로 이듬해 2월 이상룡, 김동삼 등이 가산을 정리하고 서간도로 이주했다. 이를 경북독립운동기념관에서 모형으로 전시했다(사진=윤한주 기자)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의 주목할 만한 자료로 ‘배달족강역형세도’와 ‘채색강역형세도’가 있다. 독립운동가 이원태(李源台, 1899-1964)의 저술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교재로 사용됐다고 한다.

신흥무관학교는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서간도 지역에 설립한 독립군 양성학교로 유명하다. 1910년 12월 이회영, 이시영 등 6형제를 시작으로 이듬해 2월 이상룡, 김동삼 등이 가산을 정리하고 서간도로 이주했다. 1920년까지 약 2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홍범도의 대한의용군과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등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1920년 7월에 폐교됐지만, 졸업생과 생도들은 그해 10월 청산리 전투에 참전해서 승리했다. 

특히 지난해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의 배경이 됐다. 생계형 독립군 ‘속사포(조진웅)’는 신흥무관학교 마지막 멤버로 나온다. 최 감독은 “독립군 이야기를 품게 된 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 때문이다. 나 같은 범인들은 갖지 못한 어떤 위대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었겠지만 결단이나 행동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걸 영화에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청산리전투나 신흥무관학교 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독립군의 저술이 중요한 것은 일제와의 싸움에서 총칼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경북독립운동기념관 내 신흥무관학교를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윤한주 기자)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일제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궁극적 목표는 한민족 말살이었다. 일제는 그 수단으로 우리말과 글을 금지했고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했다”라며 “(이에 대해) 민족사를 연구하는 것은 민족 보전을 위한 길이었다. 이 때문에 역사 연구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분명히 하고 독립투쟁과 병행했다”라고 말했다.
 
이원태는 안동 도산면 토계리 출신으로 퇴계의 14대손이다. 어린 시절 정통유학을 수학하면서 보냈다. 15세경에 상경하여 일가인 이원혁(李源赫)으로부터 신구학문을 겸수하기 위해 서점을 경영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개업했다. 그는 단발하고 중앙학교에도 입학했다. 그러나 이듬해 종문에서 그의 단발에 분개해 종회(宗會)를 개최하고 귀향하도록 결정했다. 종문은 그에게 솔잎으로 만든 상투를 씌우고 문중죄인으로서 사당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게 하였다. 이는 앞 편에 소개한 혁신유림이자 독립운동가인 류인식이 단발을 계기로 부친과 의절당한 것과 비슷하다.
 
이원태는 17세인 1916년 만주로 갔다. 김동삼의 집을 왕래했고 김교헌의 집에서 기숙했다. 그는 김교헌의 역사인식에 크게 감화를 받았다. 대종교에 입교했다. 1918년 귀국한 그는 김교헌의 지도를 받으며 《배달족강역형세도(倍達族疆域形勢圖)》를 저술했고 1923년에 간행됐다. 이 책은 김교헌의 저술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교재로 이용됐다고 알려져 있다.
 
▲ 독립운동가 이원태의 배달족강역형세도와 채색강역형세도이다. 만주 신흥무관학교 교재로 사용됐다고 한다. (사진=윤한주 기자)
 
그렇다면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은 누구인가? 그는 성균관대사성ㆍ문헌비고찬집위원ㆍ규장각부제학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유학자였다. 이후 단군을 만나고 일제의 식민사학에 맞서 민족주의사학을 개척했다. 최초의 단군사료집인 《단조사고(檀祖事攷)》를 비롯해서 《신단실기》, 《신단민사》 등을 역사서로 펴냈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은 “김교헌의 역사서는 재만한인사회의 학생들에게 독립의식 고취를 위한 교과서였던 동시에 일반민중이나 상해임시정부의 학생교육서로 쓰였다. 나아가 중광단·정의단·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군들에게도 정신교육의 중요한 도구가 됨으로써 독립투쟁정신을 북돋는데 크게 이바지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원태의 《배달족강역형세도》는 100여 종의 역사서적을 조사하고 고증하여 펴낸 것이다. 박 교수는 “배달족강역형세도는 만주와 한반도에 존재했던 모든 국가들을 배달족의 국가로 보고 있다”라며 “우리민족과 강역의 변천을 무려 44도나 되는 방대한 강역형세도로 그려낸 것으로 한국근대사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평가했다.
 
이와 별도로 11도의 《채색강역형세도(彩色疆域形勢圖)》를 저술했다. 만주와 한반도의 지도마다 강역 판도의 변화를 채색으로 구별했다. 이 지역에 있었던 역대왕조의 변천에 따른 시기구분이다. 김성환 박사(경기도박물관)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배달족강역형세도》의 후속으로 추측된다”라며 “이 자료는 김교헌의 《신단민사》와 일정한 관련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계속>
 
■ 참고문헌
 
김동환, 〈단군을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가〉, 《선도문화》 제11집,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2011년 
김동환, [독립운동가에게서 미래를 보다] 대한민국 역사학의 종장 김교헌 선생 (화성) 경기일보, 2015년 08월 07일 
김성환, 〈大徖敎系 史書의 歷史觀-上古史 認識을 중심으로〉,  《한민족연구》 제2호, 한민족학회 2006년 
박걸순, 李源台의 生涯와 歷史認識, 한국근현대사연구 제26집, 한국근현대사학회, 2003년
박걸순, [國恥白年](24)안동인의 역사 민족주의, 매일신문 2010년 6월 14일
박걸순, 〈일제강점기 안동인의 역사저술과 역사인식〉, 《국학연구》 제20집,  한국국학진흥원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