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영화 ‘동주’시사회가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영화에서 조명한 윤동주와 송몽규가 다녔던 연희전문대학이 바로 연세대학교의 전신이다.

▲ 지난 12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영화'동주'시사회.

영화 ‘동주’는 담담한 흑백화면과 윤동주 시인의 시 13편이 내레이션으로 깔려 서정적으로, 때로 암울한 시대의 먹먹함으로 다가선다. 이준익 감독과 배우들은 모두 영화전반에 두 젊은이를 있는 그대로 담고자 ‘진정성’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흑백영화로 제작한 이유에 대해 “우리가 기억하는 윤동주의 모습이 흑백사진이다. 암울한 시기를 그려내는데 화려한 컬러보다 흑백이 더 진실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화면에 욕심을 내다 자칫 윤동주와 송몽규를 그려내는 데 진정성을 잃을까 해서다. 또 저예산으로 가치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 12일 영화'동주'시사회에서 영화에 담고자 한 진정성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이준익 감독.

이준익 감독은 “우리는 윤동주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시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이 든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윤동주 시인의 삶과 죽음을 알게 되고, 송몽규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이 미안함을 넘어 죄스러웠다.”고 영화제작의 동기를 밝혔다.

그가 이 영화에서 명장면으로 꼽은 것은 일본고등계 형사에게 취조 받는 동주와 몽규의 대화이다. “두 젊은이가 교토까지 와서 후쿠오카 감옥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죽는 그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지키려던 신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씬”이라고 평가했다.

70년간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부도덕성을 추궁 못하고 피해자로서 억울함만 하소연

▲ 영화촬영 현장에서 이준익 감독과 주연배우 강하늘(윤동주 역)과 박정민(송몽규 역)과 대화하는 모습.(사진=배급사 딜라이트 제공)

이 감독은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가해자인 일본에 대해 그 잘못을 추궁하기보다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느라 세월을 다 보냈다. 같은 시기 독일이 전범국가로서 유럽을 유린했다. 패전 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모든 주변 국가들이 그들의 나치즘에 대해 군국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 부도덕성을 추궁하여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문책을 했다. 그것을 그대로 아시아로 가져오면 아시아의 전범 가해자로서 군국주의 주체인 일본에 대해 과연 우리는 피해당사국으로서 얼마만큼 면밀하게 모순을 지적하고 부도덕성을 추궁해 왔는지 의문이 든다. 최후의 서명을 하기 전 송몽규와 윤동주가 내뱉는 대사 속에 이것을 담으려 했다.”고 취조 장면의 의미를 설명했다.

‘아시아의 해방’이란 명분으로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고등계 형사의 논리에 동주는 “아시아의 해방,? 아시아의 해방이 뭔데?”라며 그 모순과 부도덕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70년 간 우리가 당연히 했어야 할 준엄한 심판을 두 젊은이의 대사를 통해 전했다.

실제 지난 11일 독일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경비병 출신인 94세 라인홀트 한닝에 대해 학살에 공조한 혐의로 재판을 열었다. 이에 반해 지난 12월 외교부장관 회의를 통해 사죄의 뜻을 밝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와 관료들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말 바꾸기와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대해 우리는 얼마나 적절하고 강력한 대응을 했는지 의문이다.

송몽규의 재발견, 과정이 훌륭하나 결과가 없는 존재에 대해 간과한 것을 반성해야

이준익 감독은 영화‘동주’를 통해 송몽규를 발견해주기를 관객에게 당부했다. 영화 속 송몽규는 일본 교토에서 조선인 유학생들 앞에서 “민족이 민족을 핍박하고 억압할 때 그 국가와 민족에게 남는 것은 패망 뿐” 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자신의 뜻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파 청년 몽규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 교토에서 조선유학생들 앞에서 연설하는 송몽규(박정민 분).(제공=배급사 딜라이트 제공)

이 감독은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잘 알려고 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인물이 송몽규다. 윤동주는 시집이 남아서 결과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곳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죽은 송몽규는 과정은 훌륭하나 결과가 없다. 우리는 과정은 훌륭하나 결과가 없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간과하고 심지어 무시하고 70년을 지나왔는가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몽규와 같이 과정이 아름다운 사람을 조명하는 것이 우리가 좀 더 성숙한 사회로 가기위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몽규 뿐이겠는가? 수많은 사람이 결과 없이 세상을 마감한다. 8:2법칙에 의하면 80%정도 될 것이다. 과정만 있고 결과가 없는 자기 자신을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익 감독은 또 ‘부끄러운 역사를 덮어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정면으로 바라보고 들춰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언론사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에게 명답을 들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시험에서 틀린 문제가 있다. 그 틀린 문제가 부끄럽고 싫어서 다시 거들떠보지 않으면 다음 시험에 그 문제가 나왔을 때 또 틀린다. 그런데 틀렸던 문제를 내가 왜 틀렸는지 염두에 두면 그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절대 틀리지 않는다. 부끄러운 역사를 가리고 덮었을 때에는 반드시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또 그런 역사를 맞이한다. 그러나 부끄러운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분명히 새기면 두 번 다시 그런 역사를 맞이하지 않는다.”

▲ 윤동주(왼쪽 두번째, 강하늘 분)와 송몽규(오른쪽, 박정민 분)의 가장 아름다웠던 연희전문 시절.(사진=배급사 딜라이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