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방법을 정어리 떼의 대이동을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물고기 중에서도 나약한 존재로 분류되는 정어리는 꽁치보다는 작고, 멸치보다는 크다. 뜻글자인 한자로 보더라도 정어리가 물고기 세계에서도 지극히 미약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魚(고기 어) + 弱(약할 약) = 鰯(정어리 약)

▲ 민성욱 박사
이러한 정어리는 생존을 위하여 서로 뭉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떼를 지어 이동함으로써 천적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어리는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흔했던 생선이었다. 이렇게 흔했던 생선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만다. 그 이유는 대일항쟁기 때 일제가 정어리 기름을 군수품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정어리를 닥치는 대로 잡았기 때문이다. 한때 '국민 생선'이었던 정어리도 주권을 잃은 나라와 그 운명을 같이하였던 것이다.
이후 계속 줄어들던 어획량은 결국 1943년 '영(0)'을 기록했다. 어획량의 급격한 감소는 우리 어민에게 큰 타격을 주었지만 일제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일본을 망하게 한 작은 원인이 되었다고 해서 정어리를 '일망(日亡)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낱 물고기도 그들의 생존을 위하여 뭉쳐서 하나가 되고자 한다고 했을 때 인간의 역사는 더 자명한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문구가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처음 주장하여 유명해졌고, 또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분열되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기 위해 썼던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의 약자가 지난 과거의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재의 자기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미래의 역사는 분명 그들이 주체가 될 수 있음은 틀림없는 역사의 진실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은 자기 자신이 역사의 중심임을 깨닫고 주어진 역사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역사인식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전의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 프레임이나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영원히 역사의 약자로 남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인식은 역사적 사실을 육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따라 그 진실을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의식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연관이 있다. 한 개인의 가치관, 지배적인 이념, 즉 패러다임, 삶의 목적 등을 말한다. 역사인식과 역사의식 간의 상관관계는 상호불가분의 관계이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 없이는 결코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할 수 없고, 그러한 역사의식은 또 다른 역사인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역사인식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바람직한 나의 모습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의 역사의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러한 역사의식은 다시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바꿔 놓게 된다. 따라서 역사인식과 역사의식은 나로부터 출발해서 다시 나를 성장시켜 주는 동력원이 되어 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역사를 통해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려면 먼저 역사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특정 사물이나 사람을 이해하고자 할 때도 먼저 소통하고 교감을 해야만 가능하다. 우리 역사를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우리 역사와 소통을 해야 한다. 우리 역사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 역사의 첫 출발점이자 뿌리인 고조선과 그 고조선을 건국한 한민족의 국조인 단군에 관한 인식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요 중에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 ”으로 시작하는 동요가 있다. 어효선 작사, 정세문 작곡의 ‘서로서로 도와가며’ 이다. 후렴구의 가사가 “서로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로 끝난다.
동요 가사처럼 21세기, 오늘은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역사 이래로 우리에게 유전자를 전해 준 조상들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고자 한다. 우선 나에게 유전자를 전해 준 부모는 2명, 그 부모에게 유전자를 전해 준 부모는 모두 4명,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세대 수에 따라 2의 N제곱, 즉 2의 N제곱만큼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나의 30대조 할아버지, 할머니를 헤아려 보면 "2의 30제곱 = 10의 9제곱", 즉 10억 명에 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000년 전인 11세기는 우리 역사로 보면 고려 시대에 해당하며,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당시 세계 인구는 3억 명 정도라고 하니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억 명은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현상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어도 산술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위의 산술 결과를 보면 현재 한국인들은 모두 하나의 뿌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봐도 될 만한 충분한 근거를 마련해 준다.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하나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상징적인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로 보면 지금의 한국인들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 거울을 보고 산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천 년 전의 나와 천 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현재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역사적인 존재이며 오늘도 역사 속에 살아 있다. 천 년을 사는 백학이 고귀한 것은 현실에 살지 않고 역사 속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던 찬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빛나는 얼과 수난과 시련의 시기에 겪어야만 했던 공포와 좌절의 경험도 우리에게 전해진 유전 정보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직면한 역사와 다가올 미래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진 유전자 특성 중에서 무엇을 발현할 것인지는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다.
역사의 강자와 약자, 양자 모두의 기억을 갖고 있는 지금의 한국인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위대한 사랑으로 역사를 창조한 경험이 있으며, 모진 수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역사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여 역사의 강자로 부활해야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