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의 중심이 나라는 것을 알고자 함일 것이다. 또 역사를 통해 나와 우리의 개념을 파악하게 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의 정의를 ‘아와 피아 간의 투쟁’이라고 했다. 이것은 존재인식과 연관이 있는 정의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생후 6개월부터 18개월 사이의 유아는 '거울단계'를 지난다고 하였다. 유아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란다. 처음에는 어른거리는 수상한 존재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유아는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놀라운 자아 발견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독한 인간의 길을 가는 최초의 순간이기도 하다.
 

▲ 민성욱 박사
역사의 주인공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바로 나이다. 황금, 소금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지금이라는 점도 같은 이치이다. 역사를 보면 인간은 거룩한 존재이다. 단순히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하여 사는 내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세상을 끌어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지금 존재하는 사회는 한두 명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불만가득하고 모순 투성이인 사회일지라도 그 안에는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마음과 그것을 위해 흘린 조상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해하고 좀더 나은 삶을 위한 힘은 오직 역사관에 있음을 깨닫고 이러한 ‘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기 위하여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무용지물이거나 오래되고 낡은 관념이 아니다.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의 지표로 만들 때 나와 우리의 발전이 있는 것이다. 발전하는 역사, 그 중심에는 그 누구가 아닌 내가 있다. 역사학은 과거 사실과 그것에 대한 해석이 덧붙여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날줄이 만나 역사라는 옷을 만든다. 옷이 입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이 역사도 그 역사를 인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거나 해석된다. 그래서 옷 맵시가 중요하듯 제대로된 역사인식이 중요하다. 삶의 무대에서 역사가 날개가 될 수도 있지만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역사인식,  역사에 살아 있다는 의미와 역사의 길이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헤아리게 된다면 진정한 인간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병신년, 어떤 해인가?
120년 전의 병신년,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렇게 병신 같은 일도 없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알려진 명성왕후 시해 이후로 1896년 고종이 왕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그것이다. 당시 조선에는 권력의 공백이 생겼고 친일파와 친러파 간의 권력 다툼과 조선의 각종 이권을 빼앗고자 하는 제국주의 세계 열강들의 각축전이 펼쳐졌다. 그들에게는 조선사람의 안위와 삶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도 정신차리지 못하면 우리의 주권을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역사란 말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인류가 생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났던 일 그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그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 두는 것인데, 영어의 History가 그것이다. 이 경우 아무리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지 않으면 역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 그 자체와 과거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실 중 역사가가 취사선택하여 기록한 사실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기록되지 않은 과거 사실들은 때로는 기억 속에 저장되어 전승될 수도 있다. 기억 속에 저장된 사실들은 때로는 잊혀지기도 하고 때로는 구전되어 설화나 신화로 남기도 한다. 그것이 이야기 형태인 민담으로 계승되는 경우도 있다. 또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시기를 지나 또 다른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유사'이다. 여기서 ‘유사(遺事)’는 기록의 의미가 아니라 사실을 의미한다. 즉 삼국시대 이래로 남겨진 사실(일)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기록의 역사는‘삼국사기’인데, 여기서 ‘사기(史記)’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된 말로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의 사실을 통해 교훈을 강조하는 기록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동국통감’이다. ‘통감(通鑑)’은 역사적인 시ㆍ공간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이다. 거울을 통해 그 시대를 비춰볼 수 있다는 것으로 곧 교훈을 위한 역사를 의미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역사 속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동국통감’에서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기록하였는데, 현행 역사교과서도 그것에 따르고 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존재의 의미를 알려 주는 싯구로 유명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역사적인 인물이 되고자 역사를 알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그 전에 이미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다.”
우리는 어떤 단체가 궁금하면 그 단체의 연혁을 알아보고 한 개인이 궁금하면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을 알아 본다. 우리가 역사적인 존재라는 증거이다. 이때도 중심은 나이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의미가 없는지가 기준이 된다. 즉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없다의 기준도 나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내가 당연히 역사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역사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인간 중심, 즉 나라는 관점에서 역사의 발전은 역사의 주인공인 인간 혹은 내가 인간답고 나다운 삶을 영위하는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더욱 자유로워지고 사회적으로는 더욱 평등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발전하는 것은 다음의 원리 때문이다. 공전과 자전의 원리, 구심력과 원심력의 원리, 공평과 평등의 원리가 그것이다.
 

사람의 생명 현상은 개인의 생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생명 현상에까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생명체는 우주의 생명 원리에 의해 창조, 발전, 쇠퇴,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 우주 생명의 원리는 바로 조화의 원리이다. 그리고 조화의 기준은 바로 생명 활동에서 순서 혹은 질서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개인과 전체의 조화를 의미한다. 개인의 성장이 곧 전체의 성장을 의미하고 개인의 완성은 전체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역사 속에서 찾는다면 홍익인간이다. 오래된 국정지표이면서 삶의 원칙이었던 홍익인간을 통해서 한국인의 길을 우리는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알면 보이는 것이 많다. 존재인식으로부터 삶의 철학까지 두루 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통해 얻는 지혜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역사의 주인이란 달리 말하면 역사의 주체를 의미한다. 주어진 역사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고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역사를 알고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의 주인으로서, 혹은 역사의 주인으로 사는 것인지를 역사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그 답을 찾고자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정점에서 우리는 국조이신 단군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고유한 사상과 철학 그리고 정신문화가 국학이다.
 

다시 돌아온 병신년, 붉은 원숭이의 해이다. 뜨거운 열정과 조화로운 지혜를 갖춘 붉은 원숭이의 해인 만큼 120년 전에 했던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열정적인 지혜와 위대한 정신을 지닌 우리 한국인들이기에 시련은 있을지언정 더 이상의 실수는 스스로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