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산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주말이면 등산복을 입고 산을 찾는 사람들을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없을 때 더욱 가고 싶습니다. 마치 고향처럼 말입니다. 

역사학자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은 올해 1월 국학원이 주최한 국민강좌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중국과 한국의 풍경이 다릅니다. 중국인은 폭죽으로 시작해서 폭죽으로 끝납니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인은 산과 바다로 갑니다. 일출(日出)을 보기 위해서죠. 이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밝문화’이고 태양숭배의 유산입니다. 산만 하더라도 백(白)이란 이름이 많습니다. 태백산, 백두산, 소백산 등이 있습니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은 백(白)이 태양, 신(하늘, 하날님)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산(山)은 하느님이 거하는 신(神)입니다.
 
▲ 영화 히말라야 포스터
 
그러한 점에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The Himalayas, 2015)’와 ‘대호(The Tiger, 2015)’는 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넓혀줍니다.
 
배우 황정민이 산악인 엄홍길 대장으로 열연한 <히말리아>는 해발 8,750m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데스존에서 생을 마감한 후배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한 감동실화가 아름다운 설경과 함께 펼쳐집니다. 엄 대장은 후배들에게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엄 대장은 <KTX매거진 11월호>에서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모든 산에는 신이 존재한다”며 “8,000m에 오른다는 건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한낱 미물일 뿐 그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입산하는 순간 산과 하나 되기 위해 순리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수도승 같은 마음으로 나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지 않으면 절대 나아갈 수 없다”라고 전합니다. 
 
여기서 ‘입산’(入山)이란 단어가 주목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산을 오른다고 해서 ‘등산(登山)’이라고 표현합니다. 단순히 운동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부를 것입니다. 등산화 밑의 땅으로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을 사랑한다면 수많은 동식물을 품고 있는 생명체로 봐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을 임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입니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사람 안에 율려가 있네(한문화1999)>에서 “산책을 할 때는 자신이 한 폭의 그림 안으로 들어간다는 마음을 가져보라. 그러면 헉헉거리면서 산에 빨리 오르지 않게 된다. 숨은 저절로 깊어지고 걸음은 느려진다”라고 말합니다. 산책명상법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 영화 대호 포스터
 
‘대호(大虎)’는 지리산이 배경입니다. 1925년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을 떨쳤던 ‘천만덕’(최민식 분)과 산신으로 추앙받는 지리산 호랑이가 주인공입니다. 천만덕은 호랑이 사냥에 나서려는 사람들에게 “어느 산이 됐건, 산군님들은 건드리는 게 아니여”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사냥을 하지만 새끼까지 죽이지 않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부모와 같은 산(자연)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철학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입니다. 
 
두 영화에 죽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슬프지 않고 거룩하게 느꼈습니다. 최남선이 생명이 탄생하고 돌아가는 곳으로 ‘산’을 해석한 것처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산신(山神)의 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건국한 단군왕검이 아사달산에서 어천(御天)한 것처럼. 그렇게 우리들도 언젠가 생을 마감하면 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회귀본능이 도시화로 잃어가는 한국인의 심성을 자꾸만 산에서 찾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