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을 대상으로 1년 동안 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의 산만함에 대처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점수를 어떻게 올릴까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짓기를 시켜봤습니다. 시도 좋고 산문도 좋으니, 마음대로 써보라는 것이죠. 글을 읽어보니 어느 아이도 같지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중에는 공부도 못하고 말도 듣지 않던 여학생의 글이 참신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처음으로 “글을 잘 쓰는구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빙그레 미소를 짓고 돌아서는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아이들은 국어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20대 학원강사 시절의 일이었죠.

제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시험성적이 떨어지면 복도에서 ‘엎드려뻗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야구방망이만 한 몽둥이를 든 선생님의 매질이 시작됐습니다. 성적에 따라서 이렇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차별이 극대화됐습니다. 야간자율학습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자리를 이동합니다. 공부를 잘하면 지하의 따뜻하고 넓은 독서실로 가고 그렇지 못하면 추운 교실에 남았습니다. 성적에 따라서 친구와도 같이 공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험성적이 뭐 길래? 학생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 것일까요? 사실 시험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교육의 뿌리는 우리나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외국에서 온 것이죠. 
 
뉴욕 공립학교에서 26년 동안 교사로 지낸 존 개토는 <바보 만들기(김기협 옮김, 민들레2005)>에서 미국 교육은 프러시아 교육시스템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1806년 프러시아 정예군이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패배합니다. 이후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국민에게 고함’에서 교육의 필요성을 주창하면서 강제적인 학교교육이 시작된 것입니다.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노동자 그리고 공무원으로 기르기 위해서죠. 미국은 1852년에 이 교육제도를 채택했고 한국 또한 받아들이게 됩니다.
 
<생각하는 인문학(차이2015)>의 저자 이지성은 “프러시아 교육제도의 가장 큰 목적은 개인의 인간성과 창의성을 말살하는 것이었다”라며 “그래야 사람을 로봇처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주입식 교육시스템과 시험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시스템이었다”고 말합니다. 시험제도로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니 그만큼 다루기가 쉽다는 뜻이죠. 자기 점수 이상의 미래를 꿈꾸지 못할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보다 19세기의 이런 교육을 21세기의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12년이나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시험과 성적을 없앤다면 어떨까요? 국정교과서보다 더 거센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육부 앞에서 피켓 든 학부모들의 시위와 집회가 연일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뉴욕주에서는 ‘시험거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주정부가 시험성적으로 교사를 평가하겠다고 밝힌 것이 계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시험만을 대비한 교육으로 치우칠 수 있다고 우려해서 시험거부에 나섰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입학생 숫자를 학교 담장에 현수막으로 내걸고 있는 우리나라 교사들과는 상반된 인식입니다.
 
그래도 희망이라면 2016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학기만이라도 시험에서 벗어나 진로를 찾는 ‘자유학기제’가 중학교를 대상으로 전면으로 시행됩니다. 사실 전환학년제를 모델로 했다면 유럽처럼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1년 이상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 못한 것은 대입을 앞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 반쪽짜리 제도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공교육이 아니라면 대안학교는 어떨까요?
 
지난해 국내 최초로 고교완전자유학년제로 개교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27명으로 시작해서 올해 450여 명이 다니고 있습니다. 시험과 성적표뿐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교사와 과목 그리고 학교도 없는 5무(無) 학교라는 점이 특색입니다. 오디세이학교, 꿈틀리인생학교, 열일곱인생학교 등이 생기고 있으니, 시험과 성적이라는 구시대적인 교육방식에서 벗어나는 교육의 흐름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확대되려면 어른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세대가 받은 입시위주의 교육을 그대로 대물림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 글로벌사회에서 꿈과 진로를 찾는 주인공으로 살도록 할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 아이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