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돼야 된다는 말 뒤에 숨겨진 건 최면일 뿐
절대 현명해 지고 있는 게 아냐 안주하는 것뿐 줄에 묶여있는 개마냥
배워가던 게 그런 것들뿐이라서 용기 내는 것만큼 두려운 게 남들 눈이라서

- '독' 가사 중 (프라이머리, feat. E-sense)

이 노래에 맞춰서 전우주 군(19,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은 창작 무용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강원도 정선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746.54km를 걸으면서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지난날 자신을 떠올리며 동작을 만들었다. 랩을 해준 김정연 군(19, 벤자민인성영재학교)과 함께 처음에는 친구들 앞에서, 조금씩 소문이 나면서 여러 행사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

▲ 전우주 군(사진 오른쪽)과 김정연 군(왼쪽)이 무대에 올라 함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 11월 20일 일본에서 열린 국제멘탈헬스심포지엄에 초청받았다. 청소년멘탈헬스 우수 사례로 벤자민학교가 초대되었는데 김나옥 교장과 함께 일본 도쿄대 무대에 올라 자신의 공연을 선보였다. 우주의 손짓 하나, 걸음 하나에 일본인들은 매료되었다. 감동의 기립 박수, 환호가 이어졌다. 공연 후 몇몇 관객은 우주를 찾아와 "대단하다. 정말 감동하였다. 아름다웠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주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감동하기는 쉽지만, 감동을 주는 건 쉽지 않잖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라니….

제가 잘하고 있는지, 저에 대해 의문이 많았어요. 그런데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제가 성장한 이야기를 하면서 확신하게 되었어요.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라고요."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2기 (경기북부학습관) 전우주 군

우주가 자신을 믿고,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벤자민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다닌 예전 학교에서의 생활이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너희는 앉아서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인분 제조기'"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고, 우주는 그런 교실에 앉아있는 자신을 "동상 같았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친구가 많았어요. 학교생활도 잘했고요. 그러다가 고1이 되고 3월에 PC방에 갔다가 사건이 있었어요. 바닥에 나뒹구는 가방이 있는데, 저도 모르게 순간 그 가방을 들고 집으로 와버린 거죠. 며칠 뒤 교실로 그 가방 주인이 찾아왔어요. 학교 선배였어요. 저희 부모님, PC방에 같이 있었던 친구 부모님까지 다들 불려 오셔서 머리 조아리고 죄송하다고 하고 변상하고….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어요. 그때부터 내내 얼굴을 박고 살았어요. 부모님도, 저도 저에게 정말 크게 실망했었어요. 죄책감, 수치심이 컸어요. 어디를 가든 가만히 있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해프닝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돌발적이었던 상황이 우주에게는 낙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루에 절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생활은 우주에게 고문과 같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더 억누르고 주눅이 든 채로 2년을 보냈다.

▲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서 주최한 인성영재캠프를 다녀온 뒤 쓰기 시작한 일기장, 국토대장정할 때 들고 다니며 썼던 일기장, 그리고 미국 글로벌리더십 캠프에 가서 썼던 일기장.

그러면서 우주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지난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고2 여름방학에 벤자민학교에서 주최한 인성영재캠프에 다녀온 뒤로는 그 일기장에 '계획'이 자리하게 되었다. 벤자민학교 입학을 결심하면서 우주는 지난 기억에서 벗어나, 미래의 자신은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벤자민학교는 제게 새로운 출발이었어요. 새로운 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곳, 제가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을 마무리하고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을 할 기회요.

8월 캠프를 다녀온 뒤부터 계획을 세웠어요. 벤자민 친구들과 함께한 국토대장정도 그때 세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시켜서 하는 것 말고 진짜 봉사활동도 그 리스트에 써두고 벤자민학교에 와서 하게 되었고요."

▲ 8월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나라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쓴 일기는 자못 감동적이다. 인터뷰를 위해 챙겨온 우주의 일기장에서 몇 구절을 읽을 수 있었다.


2015년 8월 18일 화요일 / 둘째 날
날은 덥고 길은 험하고 짐이 너무 많았다. 결국 몇 가지만 남기고 짐을 집으로 다시 보냈다. 쓸데없는 작은 것들에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낸 짐들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데 말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2015년 8월 20일 목요일 / 충청북도 단양 (30km 이동)
발이 으스러지듯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꾹꾹 참으며 간신히 10시간 만에 목적지 숙소에 도착했다.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걷고 걸어도 왜 이렇게 허전하죠?"
"아들, 이제부터는 네 가슴에 귀 기울여 봐.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 무엇을 해도 허전할 거야. 걸으면서 무한한 사랑을 너 자신에게 주길 바란다."
잠들 때까지 어머니 말씀에 눈물을 한참 쏟아냈다.

2015년 8월 29일 토요일 / 전라북도에서 광주시청으로 (34km 이동)
길 위에서 참 많은 마음을 받았다. 과일, 얼음물을 주신 분도 계셨고, 반찬을 챙겨주신 분도 있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고맙다.
 


"사서 고생을 한 건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변한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안에서 전우주는 변했어요. 고통을 참고 눈물 머금고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건, 제가 선택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제 저는 제 환경을 디자인할 수 있어요.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저는 제 인생에서 포기하고 싶거나,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꺼내 보고 힘을 얻을 용기가 생겼거든요."

▲ 지난 11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멘탈헬스심포지엄에 초대 받은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무대 위 왼쪽에서 세번째 학생이 전우주 군)

우주는 인터뷰를 하며 지금 다니는 학교에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했다. 벤자민학교를 통해 1년이라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보는 눈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 틀에 박힌 무용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공연을 만들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에까지 나가서 선보일 수 있게 된 것도.

우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많은 기회가 벤자민학교 덕분이라고 했다. 물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두려움을 안고 도전한 것은 오롯이 우주의 몫이었다. 그 덕분에 우주는 올해 눈 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가 저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저를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했고 숨으려고만 했거든요. 제가 저를 아주 힘들게 했었죠. 그런데 벤자민학교에서 하나하나 제가 선택한 것들을 해나가면서 저를 표현할 수 있어서, 저를 드러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우주에게 마지막으로 꿈을 물었다.

"리더가 되고 싶어요.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는 리더. 이왕이면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이기보다는, 솔선수범해서 보여주는 리더가 되고싶어요. 벤자민학교 설립자이신 이승헌 총장님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