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기자가 출연하는 영화 내부자들, 특종:량첸살인기,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포스터

지난해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불신’이라는 트라우마(Trauma)를 남겼습니다. 대표적으로 기자들이 그랬습니다. 사실(Fact)을 전해야 할 기자들이 ‘세월호 전원구조’라는 오보로 대형참사를 저질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받아쓰기 보도 경쟁하느라 검증을 뒤로 미뤘기 때문입니다. 그 앙금은 올해 영화의 단골 아이템으로 등장했습니다. 

영화 ‘내부자들(Inside Men)’에서는 이강희 조국일보 논설주간(백윤식 분)이 여론을 주도합니다. 이 주간은 재벌(오 회장)과 권력(장필우 의원)의 손을 잡고 국민을 농단합니다. 그가 한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언론의 추악한 면이 드러납니다. 사실 이 주간보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그대로 받아쓰는 동료 기자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무족보 검사 우장훈(조승우)과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가 언론을 상대하기 만만치가 않습니다.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The Exclusive : Beat the Devil's Tattoo)’는 오보가 전면으로 나옵니다. 이혼과 해고의 위기에 처한 허무혁 기자(조정석)가 특종을 통해 일약 매스컴의 스타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모습은 2년 전에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 (The Terror, LIVE)’와 비슷합니다. 윤영하(하정우)가 앵커자리에서 라디오방송으로 밀려나고 이혼까지 당했지만 테러범과의 통화를 단독 보도하여 재기를 모색한 것처럼 말입니다.
 
열정만 넘치는 허 기자는 단독 입수한 연쇄살인범의 친필 메모가 소설 ‘량첸살인기’의 한 구절임을 보도하고 난 뒤에야 알게 됩니다. CNBS케이블 방송국이 기사를 검증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겠지만, 영화는 특종으로 복직하려는 허 기자와 치솟는 시청률 때문에 팩트를 무시하는 언론사의 절묘한 결합으로 여론을 호도합니다.
 
더 큰 문제는 광고주 심기를 건드리는 기업을 고발하는 기사로 정직 처분을 받았던 허 기자가 이제는 오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보자의 입을 돈으로 틀어막는 비극일 것입니다. 열혈기자가 아니라 기레기(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신조어) 허무혁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반면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You call it passion)는 스포츠동명 연예부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가 돈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팩트로 승부하는 기자로 성장합니다. 초반에는 ‘미생’의 장그래처럼 턱걸이로 입사한 도 기자의 좌충우돌 수습기가 재밌게 그려집니다. 후반에는 특종으로 하재관 부장(정재영)의 신임을 얻으니, 장그래(임시완)와 오 과장(이성민)을 보는 듯 합니다. 하지만 스포츠동명의 편집국 또한 자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은 ‘특종: 량첸살인기’와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요? 
 
최근 모 언론사가 국방부의 홍보성 기사를 써 주고 그 대가로 1억 원을 받기로 계약했다는 사실이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정부를 감시해야 할 신문이 정부 기관지를 자처했으니, 기업 홍보기사를 쓴 것보다 더 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방부 출입기자단은 홍보기사를 쓴 언론사에 징계를 내렸는데 가장 낮은 '주의'로 결정됐다고 합니다. 일부 출입정지가 필요하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묻혔다고 합니다. 하긴 "누군들 회사가 홍보성 기사를 쓰라고 하면 안 쓰고 배길 수 있겠는가"라는 박병수 한겨레 선임기자의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 결국 기자윤리를 따지기 전에 자본과 타협하는 신문업계의 병폐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기자직 종사자는 2만7,398명이라고 합니다. 전년 대비 7.2퍼센트 증가했습니다. 언론사가 어려운 것은 기정사실인데, 기자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뉴스의 양만 늘었지 질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뷰징(abusing)’입니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기사를 포털에 반복 전송하는 행위입니다. 기사가 아니라 쓰레기를 공중에 보내는 것이죠. 10년이 지나도 다시 읽힐 수 있는 양질의 기사를 만들어야겠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려면 품이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신문기사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유료독자가 늘어나야 하니깐 요.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가진다고 하는데, 영화 속의 언론은 우리 시대의 거울이 아닐까요?
 
■ 참고문헌
이정환 외, 저널리즘의 미래, 인물과 사상사
박병수, 돈 받고 기사 쓰기, 한겨레신문사 2015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