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冊)을 이야기한다. 우리 시대의 책이다. '우리 시대'라고 명토박아 이야기하는 건 이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책이 있고, 새롭게 태어나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이책과 전자책이다. 컴퓨터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으면서 출판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익히 하는 바와 같이 전자출판이다. 전자출판의 결과물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것인가. 일거에 종이책이 없어지고 전자책으로 대체되지는 않을 것같다. 종이책 나름의 장점이 있고,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공존하는 시대. 상호 영향을 주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크레이그 모드의 『우리 시대의 책』(백원근 옮김, 마음산책 간)은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책이란 무엇인지 먼저 이야기한다. "'우리 시대의 책'이란 형체가 있는 책이다." "'우리 시대의 책'이란 형체가 없는 책이다. "'우리 시대의 책'이란 그 양쪽을 오가는 책이다."

저자는 4년간 책의 존재 방식, 독서 방법, 출판 양상의 진화를 지켜보았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우리 시대의 책'이란 종이책과 전자책 중 어떤 쪽을 가리키며, 저자와 출판사와 독자의 관계를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에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러니 종이책이 끝나고 전자책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자.

▲ 우리 시대의 책 표지. <사진=마음 산책>

 또 하나 종이책에서 종이는 매체라는 점을 생각하자. 내용을 담아 전달하는 그릇. 책에서 그릇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종이에 담았던 내용을 전자책에 담는 형태로 변화해도  책 내용은 변화가 없다.우리가 걱정하는 건 ‘책’이 아니라 ‘종이’뿐인지 모른다. 종이책만을 믿는 사람들은 출판문화의 사활을 이야기할 때, 어떤 매체에 기록을 하든 읽고 쓰기를 향한 인간의 갈망이 줄었던 적은 없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나아가 종이 매체에서 디지털 매체로의 이행을 ‘읽고 쓰기의 퇴화’로 오해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종이책에도 희망이 있지 않은가? 읽기라는 욕망은 여전하지만, 우리 시대는 킨들과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휴대용 전자 매체의 발달로 읽기 혁명이 진행 중이다. 이 혁명에 맞는 종이책이라야 희망이 있다. 그럼 어떤 책인가. 저자가 제시한 기준을 보자.

. 우리가 만드는 그 책은 손안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띤다.
.우리가 만드는 그 책은 그리운 도서관 같은 냄새가 난다.
.우리가 만드는 그 책은 여러 가지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어린이들에게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그 책은 종이에 인쇄된 책이나 사상이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임을 언제나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이 기준을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버려지고, 디지털화의 흐름 속에서 곧바로 잊힐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판면을 구현해내기가 쉬워진 데다 종이책으로는 어려웠던 ‘공유’까지 가능해졌다. 종이책이 살아남으려면 역설적으로 인쇄물만의 물성과 레이아웃과 형태가 강조되어야 한다.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옮겨 갈 때 표지나 레이아웃에서 발생하는 여러 기술적 장애에 관한 고찰이 섬세하다. 케이스나 천 소재의 제본, 면지, 속표지ㅡ종이책의 이런 부분들은 기능상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 그런 사실들이 전자책 디자인에서는 무시된다.  대부분 이런 물음들을 접할 수 없다. 왜 그것들이 존재하는가, 라는.
왜 표지가 필요한가? 내용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왜 속표지가 필요한가? 표지가 없던 시대의 자취이므로.
왜 천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 감싸서 보호하는 데 매우 적합한 재질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책을 만들려면 매체의 특성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표지가 왜 필요한지, 타이포그래피가 무엇인지, 레이아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들이 선행될 때 책은 독자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종이책도 전자책도 그리고 책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도 나름의 매체적 특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저자는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격언을 콘텐츠, 단말기, 디자인 등 실질적인 측면에서 확인하며 책의 ‘됨됨이’를 이야기한다. 최적화된 방식으로 독자를 대할 때 출판은 낙후 산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것이다.
 

독서 체험의 ‘질’적인 문제, 그리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독립적으로 출판 자금을 마련한 현실적인 경험은 1인출판을 꿈꾸는 이들에게 유익하다. 독자와 저자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 누구나 책을 만들어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독자와 출판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며 책은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저자는 현장에서 얻은 지식이 그 답을 말해줄 것이다.

원고 집필부터 제작까지 진입 장벽이 턱없이 낮아진, 바야흐로 1인 출판의 전성기라고는 하지만 책을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는 일은 여전히 큰 장벽으로 남아 있다. 출판 시장이 자본과 규모 면에서 양극화되는 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비용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 즉 기간 내 목표 금액을 달성해야만 투자가 확정되는 소셜 펀딩을 이용했던 유용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목표 금액과 기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을 몇 개의 선택지로 압축해야 하며,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 어떤 식의 홍보를 해나가야 하는지, 책을 만드는 일만큼 중요한 자금 조달법을 실질적으로 담았다.

저자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십시일반의 정신을 되새긴다. 크라우드펀딩은 단순히 출판 자금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프로젝트 진행자와 독자·투자자가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규모의 경제’화되어가는 출판 시장에서 소신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출판을 모색하는 일이다. 저자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도 출판이 여전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일일 수 있음을 자신의 사례로써 증명해낸다.

 저자 크레이그 모드(Craig Mod)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으로 세계 최초의 소셜 매거진을 만든 플립보드(Flipboard)에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플립보드에 버금가는 일본의 소셜 매거진 스마트뉴스(SmartNews)에서 고문을 지냈으며, 예일대학교 출판 과정 고문을 역임한 디자이너 겸 출판 전문가다. 세계 출판문화를 선도하는 큰 축인 뉴욕과 도쿄에 거주하며 현지의 출판 경향을 주시하고 <CNN> <뉴욕타임스> <뉴요커> <뉴 사이언티스트> 등에 칼럼을 써왔다. 

■우리 시대의 책
종이와 스크린을 유랑하는 활자들

 

원제|ぼくらの時代の本
지은이|크레이그 모드(Craig Mod)
옮긴이|백원근
출판 | 마음산책
분야|인문교양
판형|152 × 200mm
면수|252면
가격|15,000원
발행일|2015년 10월 10일
ISBN|978-89-6090-240-4 03010
담당|편집팀 이승학 과장 (02-362-1451) 정은숙 대표 (010-5328-2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