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 항상 모자로 숨기고 그러면서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벤자민학교에 입학 후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했음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교장 김나옥, 이하 벤자민학교) 김도현 군(18)은 지난 11월 18일 울산가족문화센터에서 열린 '2015 벤자민인성 페스티벌&설명회'에 울산학습관 학생 대표로 나와, 학교 입학 후 여러 활동을 통해 성장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비록 화려한 언변은 아니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도현 군의 이야기는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 '2015 벤자민인성 페스티벌&설명회'에서 자신의 성장스토리를 발표하는 김도현 군. (사진=조해리 기자)

김도현 군(18)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폐와 늑골 사이에 생긴 악성종양으로 항암치료와 방사능 치료를 받았다. 한창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부색이 변하면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고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며 부모와의 갈등도 커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누가 타고 있으면 저는 그냥 계단으로 올라갔어요. 그만큼 사람들 대하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어요.”

▲ 서울-부산 자전거 국토종주 중인 김도현 군과 울산학습관 학생들. (사진=본인 제공)


올해 벤자민학교 2기로 입학한 도현 군은 멘토들과 다양한 프로젝트와 체험 활동을 통해 잃었던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았다. 무엇보다 지난 8월 같은 학습관 친구들과의 자전거 국토종주는 도현 군에게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일주일간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는데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딱 10만 원만 챙겨갔어요. 막상 가보니 10만 원으로 숙박비와 식비를 해결해야 하는데 너무 모자랐어요. 그래도 벤자민학교 와서 처음 하는 도전인데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어떡하든 내 힘으로 끝까지 완주하고 싶었죠."

그렇게 도현 군은 5박 6일 동안 633km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에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자전거를 탔다. 태풍으로 계획했던 만큼 종주를 하지 못한 날은 다음 날 180km를 달려야 하기도 했다.

"하루 동안 건빵만 먹으며 180km 달려 스탬프 찍는 곳에 도착한 순간, 눈앞이 아날로그 TV처럼 지지직거리더니 쓰러졌어요. 거기서 숙소 찾으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도저히 갈 자신이 없더라고요. 친구들한테 나는 그냥 여기 길에서 잘 테니 너희끼리 가라 했어요.“

친구들은 쓰러진 도현 군 곁을 지키며 함께 가기를 선택했다. 2명의 친구가 먼저 출발해 숙소를 찾고, 2명이 도현 군 곁을 지켰다. 길에서 노숙도 하고, 시청 로비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만약을 대비해 어머니는 신용카드를 넣어 주었지만 도현 군은 종착지인 낙동강 하굿둑에 도착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벤자민학교 친구들과도 친해지지 못하고 항상 거리를 뒀었어요. 자전거 국토종주하면서 내가 바뀌는 만큼 친구들과의 거리도 좁혀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부산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바로 엄마가 주신 카드를 꺼내 함께 한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갔죠.”


"이제 기회가 오면 선택할 수 있는 자신 생겨"

대인관계는 좋아졌지만, 도현 군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도현 군은 중학교 때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후, 남들에게 상처를 보여주기 싫어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데 모자 때문에 자꾸 걸림돌이 되었다.

“지난 9월 제주도글로벌리더십캠프에서 1년 동안 벤자민학교의 다양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체험하면서 이건 부끄럽거나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히려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했음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증거라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 제주글로벌리더십캠프에 참가한 김도현 군.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니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집 밖을 나설 때는 습관적으로 모자를 썼고 제주도에서의 굳은 결심은 매번 흔들렸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11월초에 서울에서 열리는 미래교육포럼에 벤자민학교 학생들이 오프닝 공연을 하게 되었다며 선생님께서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어요. 무대에서 선보일 레퍼토리는 자다가 일어나서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백 번도 넘게 했던 벤자민 기공과 춤이었죠. 그런데 도저히 용기가 안 나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모자 벗고 공연해야 할 생각하니 두려웠어요."

결국 도현 군은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그날 벤자민학교 학생들의 공연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다. 결국 도현 군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미용실에 갔다.

"하루 종일 미용실 앞을 왔다 갔다 했어요. 미용실 입구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죠. 거의 문 닫는 시간에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를 밀어 달라 했어요. 삭발하고 미용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아, 내가 해냈구나!' 생각이 들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울컥 올라왔어요. 중학교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변 눈치 보고 속상해하고 마음 아파했구나. 그동안 내가 나를 괴롭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머리카락으로 내가 결정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울산학습관 김도현 군(사진=전은애 기자)

도현 군이 잘라낸 머리카락의 무게는 얼마 되지 않지만, 마음의 짐은 몇 톤을 덜어낸 듯했다. 김도현 군은 이제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에도 스스럼없이 참석하고 무대에 올라 공연도 하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할 때마다 두려움이 생기지만 이제는 ‘네!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생겼다”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