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편 이동 내용과 도시위치. 심양에서 환인까지 이동하였다.(지도 출처 : 구글지도위에 표시)

오전 5시 30분. 모닝콜이 울리면서 답사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모닝콜이 약속시각보다 한 시간 일찍 들어왔다는 것이 함정이었지만.

둘째 날은 심양에서 환인으로 이동, 환인 지역의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고 집안으로 건너간다. 바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환인으로 출발한 시간은 오전 7시 20분. 환인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번 답사는 전반적으로 이동시간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사전에 유적지별로 발표자를 선정한 후 자료집을 엮어 이동하는 동안 버스 안에서 발표와 질의·응답을 하기로 하였다. 덕분에 답사 내내 공부는 원 없이 했다. 

심양에서 환인까지 가는 길은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환인에 가까워질수록 산세나 눈에 들어오는 지형, 신령스러워지는 느낌이 꼭 우리나라에서 제천단이 있는 ‘태백’으로 가는 길 같았다. 어쩌면 환인은 ‘수도首都’라기 보다는 신성지역인 ‘소도蘇塗’에 가까운 것 같다. 

강의와 발표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린 지 1시간 30분. 답사팀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중국 고속도로 휴게소는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한 듯했지만 아무래도 먹거리와 편의시설에서는 차이가 컸는데, 그나마 환인 가는 길에 들린 이 휴게소에는 슈퍼마켓이 있어 과자나 사탕 같은 간식거리를 살 수 있었다.
 

▲ 2일차 답사 장소. 환인시내의 상고성묘군, 하고성자터, 오녀산성의 위치이다.(지도 출처 : 구글지도 위에 표시)

오전 10시 30분, 환인에 도착하였다.

제일 먼저 ‘하고성자下古城子’터를 간다 하였는데, 장소를 찾지 못하여 몇 번이나 오던 길을 돌아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혼강渾江가에 차를 세웠다. 혼강의 옛 이름은 비류수, 옛 사서에 나오는 비류수가 이곳이다.  저 너머로 어렴풋하게 오녀산성의 윤곽이 보인다. 답사팀은 ‘환인지역의 매표담당자’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잠시 쉬기로 하였다. 그동안 책에서만 보던 비류수와 오녀산성을 직접 본다는 설렘 때문일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 버스에서 내려 신나게 비류수와 저 멀리 보이는 오녀산성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데 여념이 없다.

▲ 혼강(비류수) 전경. 왼쪽 중간쯤 오녀산성의 윤곽이 보인다.
비류수에서 사진을 찍는 답사팀.

환인 지역에서 첫 번째로 방문하는 ‘하고성자下古城子 성터’는 고구려 초기의 평지성으로 알려졌다. 고구려는 방어체계를 전시성과 평지성으로 이원화하여 관리하였다.  평소에는 평지성에 기거하다가 전쟁이 날 경우 청야淸野(적의 침입이 있을 때 주민들을 성안으로 들이고 들을 비워서, 보급을 차단하는 병법)후 전시성으로 들어가 방어를 하였다. 학자들은 하고성자성은 오녀산성과 짝을 이루어 오녀산성은 전시성, 하고성자성은 평지성으로 비정한다. 하고성자성에서 발굴된 토기조각과 쇠화살촉이 오녀산성 출토품과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장방형의 하고성자성은 흙을 층층이 다지는 판축기법版築技法으로 쌓은 토성으로 지금은 홍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다 허물어지고 아주 약간 성벽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매표담당관’이 왔다. ‘매표담당관’이란 단어가 매우 낯설다. 가이드인 김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지역마다 입장권이 필요한 유적지나 박물관 등에 들어갈 때 표를 끊어주는 사람으로 이 사람들이 입장권을 끊어 주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한다. 거의 중국 정부의 공무원 격이 아닌가. 따로 표를 끊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를 관광객 통제수단으로 쓴다는 것에 더 놀랍다. 김 선생님 말에 따르면 환인과 집안지역은 고구려 유적지와 국경지대라는 이유로 더 민감하게 군다고 한다.

▲ 산 아래쪽으로 펼쳐진 농경지가 모두 하고성자터.

매표담당관은 ‘하고성자 성터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비류수 옆으로 펼쳐져 있는 논을 가리키며 ‘저 산 밑에서부터 비류수 강가까지 지금의 논이 모두 하고성자 성터’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다. 중국 정부에서 하고성자성을 발굴한 후 이곳에 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고. 그로 인해 초기 고구려 성터라고 추정되는 곳이 모두 논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 자기들 역사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 사적공원이라 쓰인 입구.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우리에게 매표 담당관은 ‘저 위에 토성이 남아 있는 곳을 알려 주겠다’며 따라오란다. 황당하고 놀라운 마음을 뒤로하고 매표담당관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지금 느낀 당황스러움은 이번 답사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참담함 시작일 뿐이었다. 앞서 가던 매표담당관은 고속도로 입구 쪽 옆길로 들어가더니 ‘사적공원史蹟公園’이라 쓰인 팻말을 달고 있는 나무기둥 앞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약간 의아한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상고성묘군上古城墓群’이라고 쓰인 비석이 보인다. 

▲ 상고성묘군 유적지 비석. 풀이 길게 자라있다.

적석총이 즐비한 상고성묘군은 하고성자 성내에 거주하였던 주민들의 공동묘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하고성자 성터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있다. 1960년대 작성된 조사 자료에는 200여 기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불과 30여 기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 잡초가 무성히 덮힌 적석총과 그 앞에 가지런히 작물이 심겨져 있는 밭.

▲ 사람은 어디가고 무덤위엔 나팔꽃만 피었을까.

나무기둥 안쪽으로는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안쪽으로 나 있었고 양옆으로 사람 허리춤까지 올라올 정도로 길게 자란 풀들이 있었다. 우리 일행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발걸음에 잡초들이 꺾이면서 풀과 쑥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이런 자연의 싱그러운 향을 참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곳에 우리 선조의 발자취가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풀을 헤치며 10m가량 들어가자 적석총들이 보였다. 웃자란 잡초들과 뒤엉켜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적석총인지 쉽게 알 수 없을 듯하다. 적석총이 30여 기가 있다고 하였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은 몇 기 되지 않았다. 심지어 적석총 앞에 갓 심은 듯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배추들이 가지런히 열을 맞춰 심어져 있었다. 우리나라 고분들도 잘 관리가 안 되는 곳은 밭도 되고 논도 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이곳에서 이렇게 홀대를 받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쓰라리다.

▲ 강의를 듣는 답사팀. 마고복본사상을 현대에 펼치기 위한 뜨거운 마음들을 가졌다.

답사팀은 자라고 있는 밭작물을 피해 밭 한 귀퉁이에 조심조심 자리 잡고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선도문화와 고구려 건국에 관련된 정경희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40여 분 정도 지났을까. 머리 위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마치 돌부처 인양,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의를 하였고, 강의를 들었다. 내리는 비도 마고복본사상이 펼쳐진 옛 역사를 되짚어 현대에 되살리겠다는 천손문화연구회 회원들 가슴 속 다짐의 불길을 끄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강의가 끝난 후 차에 탄 우리에게 가이드 김선생님은 ‘선조들께서 우리 팀이 이곳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내리는 비’라는 멋진 해석을 붙여 주었다.

▲ 환인시내 입구에 있는 오선녀상.

조금씩 꼬르륵 거리는 것을 보니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 점심은 오녀산성 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로터리 한복판에 서 있는 ‘오선녀상’이라 이름 붙어 있는 다섯 명의 여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의 이름을 따서 ‘오녀산성’이라 이름 붙였건만, 우리 민족 관련 설화에는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여자들(!)이다. 저 여인상을 보니 고구려 주몽이 제일 먼저 수도로 삼은 곳으로 알려진 곳을 이대로 ‘오녀산성’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 청사초롱과 옥수수, 가마솥, 장작 그리고 더운날씨에 늘어진 멍멍이까지. 고려성 식당의 풍경이 인상깊다.

고려성 식당은 이름부터 정체성을 제법 잘 드러내고 있었다. 한식메뉴에 식당 종업원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약간 낡은 한복이었지만 이국에서 한복을 보니 제법 반가웠다. 식사도 맛이 있었는데, 다른 것보다 대들보(!)에 매달아 말리는 옥수수와 청사초롱, 가마솥과 장작이 인상 깊었다.

▲ 식당 뒷편 전망대에서 보이는 오녀산성. 정상부가 평탄하고 천연암석이 성벽을 대신한 모습이 특이하다. 오녀산성 오른편 아랫쪽으로 환인댐 수문이 보인다.

식사를 마친 후, 김 선생님이 식당에 들어올 때와 다른 산길로 인도하였다. 2~3분 정도 올라가니 탁 트인 풍경이 멋진, 전망대 같은 곳이 나타났다. 오녀산성이 좀 더 가깝게, 그리고 선명하게 보였다.

아아,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 천손문화연구회 2015 중국 동북3성 선도문화탐방 그 다섯번째 ::  
 [5편] 오녀산성에는 통천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