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충사의 박제상 영정(제공=양산시)

울산은 옛 신라의 땅이다. 당시 신라인들은 고조선에서 왔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고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았다고 밝혔다. 이승휴 또한 <제왕운기>에서 신라는 단군의 후손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성씨인 박(朴)은 밝, 밝음의 한자식 표기이다. 이름인 혁거세(赫居世)는 우리말로 ‘밝, 불구내(弗矩內)’이며,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림(光明理世)’을 뜻한다. 이는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재세이화(弘益人間 在世理化)’에서 비롯됨을 알 수가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이치로 다스리라는 단군의 뜻이 박혁거세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제상을 보면 어떨까?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는 신라의 왕족으로서 그의 가문에 주목했다. 
 
신라의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에서 비롯된 박 씨 왕족 파사왕계 가문은 아도갈문왕[참시선인(始仙人)], 물품파진찬(물계자), 박제상, 백결선생 등으로 이어졌다. 선가들을 배출한 신라의 대표적인 선도(仙道) 가문이었다는 것이다. 
 
탈해이사금 이후 박 씨 왕족은 변경 요새지에 파견하는 관행이 생겼다. 2세기 말부터 3세기 초까지 파사왕계의 물품파진찬은 오늘날의 양산에 해당하는 삽량주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박제상은 이곳에 부임하고 신라의 자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개입으로 내물왕이 제거되고 실성왕이 즉위하자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는 삽량주에 은거하면서 <징심록(澄心錄)> 15지를 펴낸다. 총 3교 15지 체제로 상교 5지는 부도지,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와 중교 5지는 사해지, 계불지, 물명지, 가악지, 의약지 그리고 하교 5지는 농상지, 도인지와 나머지 3지는 미상이다. 
 
물론 징심록 원본은 전하지 않고 영해박씨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서 추정할 수가 있다. 다만 박제상이 당시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방대한 규모의 책을 어떻게 펴낼 수 있었을까? 라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박제상은 박씨왕족의 핵심 성원으로 왕실 소장 자료들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라며 "선도를 입국이념으로 하였던 신라왕실에서 선도 전통을 왕실 차원에서 정리해오고 있었고 이것이 징심록을 편찬할 때에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박제상은 오늘날의 양산에 해당하는 삽량주에 은거하면서 <징심록>을 펴냈다. 박제상과 그의 아들 백결을 모신 효충사 전경(제공=양산시)
 
징심록 중에서 <부도지(符都誌)>는 마고부터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진 한국선도의 계보를 전하고 있다. 징심록은 영해박씨 가문에 대대로 전해오다가 대일항쟁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만다. 박제상의 후손인 박금 씨가 원본을 기억해서 되살렸다. 김은수 씨가 한글로 번역하고 주해해서 1985년에 단행본으로 펴냈다. 이러한 점은 <태백진훈>과 <단군세기> 등의 선도사서를 펴낸 고성이씨 가문과 유사하다. 후손에 의해서만 전해질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당시의 지배층이 선도사서(仙道史書)를 금서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서령(收書令)이 대표적이다. 
 
박제상의 문헌만 후대에 복원한 것이 아니다. 유적 또한 마찬가지다. 앞서 소개한 울산의 치산서원을 비롯해서 양산 효충사(孝忠祠), 공주시 동계사(東鷄寺), 경북 영덕 운계서원(雲溪書院) 등이 있다.
 
효충사는 박제상과 그의 아들 백결 선생을 위패로 모셨다. 1946년에 처음으로 세워졌고 1988년 개축했다. 경상남도기념물 제90호이다. 양산시는 지난해 10월 박제상유적 효충역사공원을 조성했다. 동계사는 신라의 유신이었던 류차달이 시조 박혁거세와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모신 것이다. 훗날 사찰이 확장되고 동학사(東鶴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운계서원은 1824년 지방유림이 박제상·박세통·박응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최치원의 유적이 전국적인 것처럼 박제상 또한 다양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다만 조선시대 효와 충이라는 유교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최치원이 말한 우리나라 고유의 도, 선도(仙道)를 잇는 박제상 유적이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 참고문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출판부2006년
박제상 저, 김은수 역, 부도지, 한문화 2002년
정경희, 4세기 후반~5세기 초 신라의 仙道와 朴堤上, 고조선단군학 제27호, 고조선단군학회,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