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는 각자의 이념을 고수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여당은 교과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며 국정화=통합 프레임을, 야당은 친정부 편향, 친일 독재 미화 등을 문제 삼으며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고 있다.

학계와 교육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역사의 흐름에 맞게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필거부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따라 편찬된 교과서로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능력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온 나라가 국정화로 시끄러운 가운데 역사를 공부하는 당사자인 학생들의 입장은 과연 어떨까. 중앙일보가 14일 종로학원ㆍ하늘교육에 의뢰해 올해 수능에서 한국사를 선택한 수험생 6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3.4%(439명)가 '한국사는 EBS 교재로 공부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수능시험에서 EBS 교재 연계 출제율이 70% 정도로 높다 보니, 학생들은 역사 교과서보다 EBS 교재에 목을 더 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시스템 속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과연 '교과서가 검정이냐 국정이냐’ 하는 문제가 얼마나 가슴 깊이 와 닿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분명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자 기성세대가 짊어진 의무이다. 그러나 올바른 교과서가 나온다 한들, 역사를 대입 암기과목으로 전락시키는 주입식 교육의 패러다임 속에서 얼마나 아이들이 역사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교육의 목적은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높은 점수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스스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인성을 길러주는 데 있다. 교과서 내용만 바꾼다고 '외우는 과목'이란 역사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는다.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는 자기 주도적인 교육 환경이 뒷받침될 때, 역사에 대한 평가도 올라갈 수 있다.

국정화 타결에 있어 기득권을 위한 당의 밀어붙이기식 이념 주장이나 사학계의 무조건적인 집필 거부만이 능사는 아니다. 소모적인 논쟁은 그치고, 각 진영의 의견을 조율해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를 교육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말도 있지 않던가. 역사 교육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교실에 갇혀 공부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정작 지금의 정권과 교육계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