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는 존재감이 별로 없었어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못 하지도 않았으니 눈에 튀는 학생도 아니었고요. 있는 듯 없는 듯 남들 하는 대로 공부하고, 막연히 대학가고 취업할 생각하는 학생이었죠.

그런데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서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 돼요. 남들과 다르게, 새롭게 저만의 선택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 남들과는 다른 저만의 특별함을 계속해서 찾게 돼요!"


정용화 군(19)에게 인터뷰를 마치며 못다 한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1년 과정의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교장 김나옥, 이하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지 6개월, 용화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지난 9월 말 대학 탐방을 위해 서울을 찾은 용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2기 부산학습관 정용화 군


-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무엇인가

"벤자민학교가 벌써 절반이 지났어요. 앞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고등학교 복학과 검정고시, 대학 진학에 대한 생각이 많죠. 예전에는 주변에서 다 대학을 가니까 당연히 가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벤자민학교 통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하면서 '대학은 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돼요."


- 대학 진학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국토대장정 때 대학생 형, 누나들과 깊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다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던 형들이죠. 그런데 벤자민학교 입학하기 전에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취직이 안 될 텐데 걱정이다' '대학을 나와도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자기가 뭘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예전의 정용화와 지금의 정용화 어떤 차이가 있나

"가장 큰 변화는 '꿈'이에요. 일반 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에 따라 꿈, 학과 이런 걸 정해야 했어요. 모의고사 수능에서 5등급이 나오면 거기 맞춰서 가능한 학과, 진로를 써내야 했죠. 5등급인데 의사나 변호사가 된다고 하면 학교에서는 '공부도 못하면서 헛소리나 한다'고 핀잔 듣기 일쑤였어요. 꿈을 차단당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벤자민학교는 달라요. 나를 성적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아요. 저 스스로 억누르고 자제해야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크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겠죠. 그래도 꿈꿀 기회도 없었던 예전과 지금은 천지 차이에요."


일반 학교를 다닐 때 용화는 '그냥 평범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친구와 운동, 특히 축구를 좋아했던 고등학생. 다만, 공부는 한 번도 재미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공부가 재미없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나 사고 없이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용화는 아버지로부터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입학을 권유받았다. 아버지는 "보통 소는 우리 안에서 키우는데, 이제 너는 갇혀서 자라는 집소가 아니라 자유롭게 방목해서 자라는 소가 되길 바란다"며 완전자유학년제로 알려진 벤자민학교를 권했다.

고3 1년만 보내면 졸업이라는 생각에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용화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벤자민학교 2기로 입학했다. 벤자민학교 1기 학생들의 영상을 유튜브로 보면서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 벤자민학교 1기 학생들을 보고 어떤 '확신'이 생겼나

"여기서 1년이라면 나도 정말 바뀔 수 있겠다는 확신이었어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경험을 통해 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싶었거든요.

어릴 때야 그저 남들 말하는 대로 의사, 선생님 하겠다고 말했는데 고등학교 올라오고 나니 구체적인 뭔가를 정해야 하더라고요. 누가 시켜서 정하기도, 그렇다고 남들 하는 걸 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벤자민학교 1기 학생들이 자기 성장스토리를 발표한 동영상을 봤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정말 당당하게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하더라고요. 가슴이 뛰었어요."

▲ 용화의 20박 21일의 변화가 이 두 사진 속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작할 때(왼쪽)와 모든 여정을 마친 뒤(오른쪽)의 표정이 180도 다르다.


- 국토대장정을 하게 된 것도 그 이유였나

"네. 19년 평생 살면서 한 번도 도전이라는 걸 안 해봤더라고요. 청년탐험가 이동진 멘토님 영화 '고삐' 시사회 다녀와서 자극을 크게 받았죠. 이동진 멘토님이 '두려움이 느껴질 때는 두려움을 끌어안아라!'고 한 말에 힘을 얻어서, 일단 저질러보자는 마음으로 하게 됐어요.

7월 10일부터 30일까지 한여름 뙤약볕, 몰아치는 태풍 다 물리치고 해남 땅끝마을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600km를 걸었어요. 20박 21일 동안 길 위에서 먹고 자고 걷고. 200명이 도전해서 최종 80명이 완주했어요. 저는 그 80명 중의 한 사람이고요. 참, 저는 한 번도 열외되지 않고 끝까지 제힘으로 해냈어요.


- 600km를 걷는 동안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했나

"'나는 이걸 통해서 정말 변할 수 있을까' 걷는 동안 계속 스스로 묻고 또 물었어요. 그런데 파주 임진각에 도착하고 나서 알았어요. '아, 변했구나! 내가 바뀌었구나!'

사실 근성은 있는 편이었지만, 뭔가를 끝까지 제대로 해본 기억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국토대장정 통해서 정말 내가 뼛속까지 해냈다는 것, 내가 선택한 것을 오직 내 힘으로 끝까지 완성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정말 자신감이 커졌어요."

▲ 서울 인사동에서는 '프리허그'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우리는 국토대장정한 청년들. 우리가 걸어온 길의 기를 드립니다'는 문구를 들고 남녀노소, 외국인 등 많은 이들과 포옹하며 자신감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 혹시 포기하고 싶었을 때는 없었나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태풍이 와서 비도 엄청 많이 오고 힘들었어요. 진행요원, 참가자들이 많이 포기했었죠. 그때 겁도 나고 걱정도 되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전화했더니 엄마가 '시작한 거니까 끝까지 하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엄마가 '집에 와라'고 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집에 갔을 거에요. 그런데 엄마가 제 결심을 지켜주신 것 같아 고마웠어요. 끝까지 하라는 엄마 말에 오기도 생기고.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는데 포기할 수 없었죠."


-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난 소감은

"제가 진짜 완전한 국토대장정을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대로 하려면 파주 임진각 지나서 개성, 평양, 저 북쪽 끝까지 가야 하는 건데… 아쉬움이 정말 컸어요. 통일이 되면 1,200km 제대로 된, 진짜 완벽한 국토대장정 할 거예요.

생활 속에서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걱정하는 마음이 컸는데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 힘을 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한 경험을 많은 사람들하고 더 나누고 싶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가 지금 얻은 게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더 이야기하고 이 의미를 나누고 싶어요."

▲ 20박 21일의 최종 목적지 파주 임진각에 도착해서 함께 한 조원 형, 누나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남겼다. (용화는 'IM' 위에 올라 앉아있다)


- 하고 싶은 것은 찾아가고 있나

"저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경찰이나 소방관을 하고 싶어요. 벤자민학교 통해 뵙게 된 멘토님도 현직 경찰이시고요. 누군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한다는 것, 그게 정말 멋진 인생인 것 같아요.

참, 나중에는 벤자민학교 멘토로도 활동하고 싶어요. 10년쯤 뒤에는 벤자민 12기 학생의 멘토가 되어서 진로 고민도 들어주고 도움되는 것도 이야기해주고 그렇게요."


- 용화에게 벤자민인성영재학교란

"기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기회에요. 1년 전에 저와 지금의 저는 완전 다르니까요.

일반 학교 다닐 때는 매일 똑같은 날이었어요. 학교, 야자, 학원, 집. 예측 가능한 날의 연속이요. 그런데 지금은 매일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신나고 재미있어요. 내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