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도(仙道)는 한민족 역사의 출발점에서 시작된 고유의 문화전통으로 중국에서 삼교(유교·불교·도교)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주로 ‘하늘문화(제천문화, 천손문화)’ 또는 ‘밝문화(배달문화, 광명문화)’로 알려져 있는데, 하늘의 밝음과 사람 내면의 밝음을 하나로 바라보는 ‘천인합일(신인합일)’의 심신수련문화이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 불리는 현대에 한국선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국선도는 심신수련을 통한 인성 회복, 인격완성을 추구(홍익인간), 이를 상고‧고대시기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사회의 주요 정치사회 운영원리로 적용(재세이화)되어왔다. 이것은 과거 인성 회복을 통한 국가 통치 역사가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성 회복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밝히기 위하여 한국선도 연구의 본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천손문화연구회는 지난 8월 9일부터 16일까지 중국 동북 삼성지방에 남아있는 한국선도의 인성 회복과 국가통치의 수단이자, 한국선도 연구 핵심인 '제천문화'의 원류를 찾아보는 국외답사를 진행하였다. 이번 답사는 7박 8일간 이동 거리만 장장 4,000km에 달하는 대장정으로 현존하는 유물·유적을 통해 '제천문화'의 원형과 배달국 이후 국가별로 확장, 변화된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동북공정을 통하여 왜곡, 훼손, 은폐되고 있는 우리 유물·유적들의 현주소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 천손문화연구회의 7박8일, 4,000km에 달하는 대장정 루트.

답사의 첫째 날인 9일은 심양瀋陽 공항으로 입국, 먼저 동북공정의 동향을 볼 수 있는 요녕성박물관을 방문한 후 7천 년 전의 신석기 유적지인 신락유적지新樂遺蹟地에서 당시 모계사회의 생활상을 확인하고 선도사서仙道史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당시 동일한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었던 비서갑 웅족熊族의 정치적 상황을 유추해 보았다.

둘째 날인 10일에는 환인桓仁으로 이동, 하고성자下古城子 성터와 상고성묘군上古城墓群, 오녀산성五女山城을 통하여 초기 고구려의 도성방어시스템을 확인하고 제천의식의 장소와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이후 집안集安으로 이동, 투숙하였다.

셋째 날인 11일에는 압록강 조망 후 환도산성丸都山城, 산성하고분군山城下古墳群, 집안박물관, 국동대혈國東大穴, 장군총을 둘러 본 후 통화로 이동하여 만발발자 유적萬發拔子 遺蹟을 찾아보았다. 만발발자 유적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백두산 일대에서 발견된 6천 년 전 최대 사전史前의 제천유적이다. 답사 전부터 많은 시대를 하고 갔지만 현지에서 직접 유적의 위치를 찾아야 할 정도로 보존과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 이후 다음날 백두산 천지 등반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송강하松江河로 갔다.

넷째 날인 12일은 송강하에서 시작한다. 송강하는 백두산과 가장 가까워 많은 관광객이 백두산 천지를 오르기 위하여 하루 묵어가는 시골 마을이다. 송강하에서 백두산 서파 입구까지는 차로 30여 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 오른 후 백두산의 화산활동으로 생긴 기암괴석과 원시림을 볼 수 있는 금강대협곡을 보는 것으로 4일 차 일정을 마무리한 후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한 도시인 돈화敦化로 건너갔다.

다섯째 날인 13일은 돈화에 남아있는 발해의 초기 수도 오동성傲東城과 동북공정이 발해를 어떤 식으로 조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발해광장渤海廣場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발해가 건국된 동모산東牟山과 목단강牡丹江을 조망한 후 길림吉林으로 이동하였다. 돈화에서 불과 2시간 거리인 길림에서는 고조선의 2번째 수도인 ‘백악산 아사달’로 비정될 뿐 아니라 부여와 발해의 중심지였던 용담산성龍潭山城을 올라 길림 시내를 조망하였다. 용담산성에서 내려온 후, 고구려의 도성 방어 시스템을 따라 한 발해의 평지성, 동단산 남성자고성동단산 남성자고성東團山南城子古城을 찾았다.

답사가 막바지로 흐르는 여섯째 날인 14일에는 흑룡강성 조원현黑龍江省 肇源縣을 찾아 부여의 초기 유적지 중 하나인 백금보유적지白金寶遺蹟地를 보았다. 백금보유적지는 송원평원 쪽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적로 비슷한 성격을 가진 ‘망해둔 유적지’, ‘한서 유적지’, ‘백금보 유적지’를 합하여 ‘백금보 문화’라고 칭하고 있다. 이곳은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신녀’가 ‘마고 복본사상’을 눈강을 타고 내려와 남옥저를 거쳐 경주로 가져온 이른바 ‘파소루트’의 시작점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백금보 유적지를 살펴 본 후 파소루트를 체험하기 위하여 비록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원현에서 다음 목적지인 대안大安시까지 배를 타고 눈강을 이동하였다.

실질적인 답사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백금보 유적지 이후 부여문화가 펼쳐진 대안시의 한서유적지漢書遺蹟址를 찾았다. 그리고 길림성의 성도, 장춘長春으로 넘어가서 길림성에서 발견된 유적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길림성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저녁식사 후 전체 모임을 하고 답사를 통하여 개개인이 느낀 점을 나누고, 정리했다. 

16일에는 아침 일찍 장춘공항으로 출발, 귀국길에 올랐다.

▲ 백두산에서 구호를 외치는 답사팀.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건에 대한 사실을 특정하는 것도, 그것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도 천차만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이 우리 역사, 나아가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말할 나위 없이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나 국사교과서 국정화로 이념적 편향 논란이 극대화 되는 요즘,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실증사학과 민족사학,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한국사상과 역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한국 선도 연구의 최고 권위자, 정경희 교수 이하 천손문화연구회가 답사 내내 가장 많이 외쳤던 말은 ‘상고사 복원, 국사교과서 개정’이다. 한민족의 시원부터 존재하였던 한국선도와 선도 사관史觀이야말로 왜곡되고 훼손된 한국사, 그중에서도 뿌리인 상고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역사를 바로잡자’고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혹자는‘어차피 지금 다 남의 땅인데 그런 거 이야기해서 무엇 하느냐’고 비판(혹은 비난)할 수도 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성이 황폐화 되고 이기주의와 인간성 상실이 판치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인성 회복이 실제 과거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그렇기에 현재 펼쳐지는 다양한 분야의 인성 회복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답사는 끝이 났지만, 기자는 그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다. 그것은 기자뿐 아니라 함께 했던 25명 모두가 그러했다. 7박 8일간의 상고사 복원, 국사교과서 개정에 대한 뜨거운 열망, 그리고 가능성과 희망의 기록을 차근차근 풀어내고자 한다. 다만, 앞으로 연구 성과를 기대할 부분이 많기에 이번 탐방기는 기존과 달리 주로 기자의 느낌과 체험을 중심으로 서술할 예정이다.

탐방기 내 지명은 모두 한자어의 한국식 발음으로 기록하였으며, 필요한 경우 중국식 발음을 함께 적었다. 사용된 모든 사진은 기자가 직접 찍거나 답사 팀원이 찍었으며, 답사 팀원이 찍은 경우 사진 설명 내 찍은 사람을 표시하였다. 다만, 여러 사진이 섞여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by 천손팀’으로 명기한다. 이동거리와 장소를 보여주는 지도는 구글Google지도를 캡쳐하여 사용하였다.

끝이 났지만, 끝이 아닌 시작임을,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끝을 향하여 하나씩 이루어 나갈 것을 조심스레 자신하며 2015 천손문화연구회 선도문화탐방기 중국동북3성편을 시작한다.

 

 ✔ 천손문화연구회 2015 중국 동북3성 선도문화탐방 그 두번째 ::  
 [2편] 심양으로 가는 길 - 요녕성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