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낙오되었다. 동료들은 그가 죽었다고 판단해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화성을 떠났다. 구조대가 온다고 해도 4년이 걸린다. 화성 기지에 남은 주인공은 남겨진 31일 치의 식량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린다.

영화 ‘마션(Martian)’의 흥행이 심상치 않다. 개봉 3일 만에 관객 130만 명을 돌파했다. ‘우주’를 소재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보다 그 속도가 더 빠르다.

2013년 ‘그래비티(Gravity)’, 2014년 ‘인터스텔라’ 그리고 2015년 ‘마션’까지. 매년 극장가를 찾아오는 우주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적 상상력만이 아니라 과학적 고증까지 철저히 해나가는 이들 영화 덕분에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영화를 통해 우주를 더 가깝게 느끼고 배워가는 계기가 된다.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 식물학자 역할을 맡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고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화성에서 살아낸다. 처절한 서바이벌이라기 보다는 희망찬 생존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지구에서는 미항공우주국(NASA)을 중심으로 한 ‘마크 와트니 구하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우주역학, 컴퓨터공학, 물리학, 화학 등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이 마크를 구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야말로 천재들의 향연이다. 그것도 한 사람을 살려내기 위한 고군분투에서 희열마저 느껴진다.

그러는 중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어째서 우주를 향한 것인가. 어째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컨트롤할 수 없는 우주라는 공간으로 가서 위기의 순간을 만든 것인가.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우주를 바라보는 인식적 한계와 맞닿아있는 질문이었다.

올해도 10월 대한민국은 ‘노벨상’이라는 축배를 들지 못했다. 특히 과학 분야에 있어 올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해가 되었다. 중국은 중국 국적의 최초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의학상, 물리학상 수상자를 냈다. 게다가 물리학은 2014년에 이어 연속 수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세계 1위라 한다. 전체 투자 금액 규모는 일본의 30%에 불과하지만 최근 그 비율이 급증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투자는 늘었지만, 노벨상을 받을 기초학문 연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례로 한해 41개 의대 졸업생이 3,000여 명인데, 이들 중 기초의약 분야에 남아 연구하는 이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보상도, 사회적인 인식도 좋지 않다. 연구를 해도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으며 실패했을 때 재기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결국 사회 의식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외국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한 가문, 대학, 연구실 등에서 연달아, 때로는 사제지간이 시대를 초월해 수상하기도 한다. 그만큼 기초 학문의 연구는 시간과 노력, 정성, 투자가 모두 필요한 분야다. 클릭 한 번으로 답이 나오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영화를 보며 ‘어째서 우주를 향한 것인가’라는 나의 질문에 대해 영화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이렇게 답한다.

“혹시라도 내가 여기(화성)서 죽게 되더라도, 나는 내 일을 너무나 사랑했고 나의 일은 정말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전해주세요."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헌신을 가치롭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