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라! 허리와 무릎을 구부리고 손을 모아서 얼굴에 대고 있다.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인물이다. 마치 기도하거나 춤을 추는 종교인처럼 보이지 않은가? 최소 3~4천 년 전에 우리나라에 살던 사람으로 학자들은 샤먼(shaman)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일까? 또 암각화에 새겨진 많은 동물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도 범상치가 않다.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암각화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인물상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모아서 얼굴에 대고 있다.(그림=장석호 연구위원)
 
울산 암각화박물관 1층에는 높이 4m 너비 8m로 복원한 반구대 암각화 모형이 있다. 주위로는 청동기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고대인이 살았던 모습을 재현했다. 바다짐승과 뭍짐승을 잡으면서 수렵생활을 하던 이들의 모습은 ‘원시적이다’, ‘미개하다’라는 인상을 주기에 쉽다. 
 
지금의 사람들은 마치 동물원을 관람하듯이 스마트폰으로 담으려 하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인은 무조건 원시적이고 현대인은 덜 원시적인가? 물질적인 도구 개발에서는 우리가 앞설 수 있으나, 그들도 우리 못지않은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고대인들은 암각화와 별도로 생활했다는 점이다. 이곳은 성스러운 제의(祭儀)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단군조선을 계승한 한(韓)에서 신성지역으로 소도를 만든 것과 같다. 소도는 제사장인 천군(天君)이 다스리던 곳이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반구대암각화 제작 집단은 울산 태화강 중상류 지역을 떠돌며 수렵채집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라며 “태화강 상류의 지류인 대곡천의 계곡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성스러운 제의의 공간으로 적합한 곳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고대의 제의공간을 주거지역에서 반경 20km 거리 이내로 본다.  
 
▲ 울산 암각화박물관 1층에는 반구대 암각화 모형이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그렇다면 제단의 주인공이 있었을 터. 300여 바위그림 중에서 13점의 사람 형상이 있다. 앞서 소개한 인물은 암각화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그려져 있다. 크기로 보면 가로 3~7.2cm에 세로 19.7cm이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지름은 3~3.3cm이다.
 
장석호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얼굴의 길이를 3.3cm로 볼 때 이 형상은 대략 6등신에 해당한다"라며 "무릎이 구부러진 것을 감안하면 약 6.5등신에 이른다. 머리의 크기를 25cm라고 가정한다면 이 사람은 키가 62.5cm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샤먼이라고 하지만, 제사장이자 무당이라고 볼 수 있다. '무당 무(巫)'는 하늘(▔)과 땅(_)이 연결되고(│) 그곳에서 사람(人)이 춤을 춘다(巫)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단군왕검, 박혁거세, 화랑과 처용, 차차웅 모두 제사장으로서 무당이라고 해석한다. 비단 우리나라만 해당하지 않는다. 시베리아 암각화에는 산양, 사슴, 말, 새, 소 등 주로 동물상과 남자와 여자의 인형상이 등장한다. 씨족집단의 풍요다산으로 주관하는 제관의 모습으로 본다. 
 
한편 인물들이 동물의 승천을 안내하고 있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서영대 인하대 교수는 동물들이 보고 있는 방향에 주목한다.
 
“고래나 거북 같은 바다동물들은 대부분 위(하늘)을 향하고 있다. 육지동물들은 대부분 서쪽(산)이다. 이 중에서 이상한 것은 바다동물들이 동쪽(바다 쪽)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행렬의 앞에는 멀리를 조망하고 있는 인물상, 뒤에는 사지를 벌리고 있는 인물상이 있어 마치 바다동물의 승천을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 울산 반구대암각화에서 사지를 크게 벌린 인물상이다. 수족과장형 인물상으로 샤먼을 나타낸다. 이러한 인물상은 동아시아 알타이지역 암각화에서 발견되고 있다.(사진=암각화박물관)
  
서 교수는 바다 동물의 영혼이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행렬 앞뒤에 있는 인물은 초월적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샤먼이라는 것. 그러니까 동물의 혼을 고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반구대 암각화 제작 집단의 정신세계는 종교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들의 영적 성지(聖地)로서 암각화가 특별한 이유다.(계속)
 
 
■ 참고문헌
 
서영대, 한국 암각화의 신앙과 의례, 한국암각화학회, 2008년
장명수, 암각화를 통해서 본 우리나라 선사인들의 신앙 사유, 한국암각화학회, 1998년
장석호, 동북아시아 속의 대곡리 암각화, 동북아역사재단, 2005년
전호태, 한국의 선사 및 고대 초기예술과 반구대암각화, 경남사학회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