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思悼)>에서 사도세자(유아인)는 반성을 많이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머리를 찧다가 혼절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석고대죄(席藁待罪)입니다. 당시 죄에 대해 처분을 기다리는 자세는 죽음과도 불사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 자신의 진정성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사죄하는 모습은 어떨까요? 일본 하토야마 전 총리는 광복 70년을 앞둔 지난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찾았습니다. 그는 순국선열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했습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식민통치했던 일본이 고문이라는 가혹한 짓을 하고 생명을 빼앗는 일까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그분들의 넋을 기린다”라며 추모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는 1970년대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대의 잘못을 후손이 사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줍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행동이 독일의 양심을 깨웠듯이, 하토야마 전 총리의 사죄는 일본의 양심을 깨어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외국의 후손이 선대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과 달리, 한국의 친일파 후손들은 어떨까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선대의 잘못에 대해 사죄는커녕, 재산을 되돌려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친일과 망각> 4부작은 주목할 만합니다. 광복 70년을 맞아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했습니다. 단순히 친일파 후손들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단 1%도 안 되는 수치이지만, 선친의 잘못을 반성하는 친일파 후손들을 인터뷰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99% 이상의 사람들은 왜 반성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교육에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를 보면서 자란 자녀에게서 반성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것입니다. 친일파 가문은 조국을 팔고 막대한 부(富)를 얻었습니다. 후대로 재산이 대물림됐지만, 얼(Spirit)은 사라진 것이죠.

무엇보다 우리의 정신을 파괴한 일제의 독소가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다음은 광복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입니다.

“지난 2년 동안 국내 사회는 너무도 혼란하였다. 이것은 과거 36년 동안에 왜적이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민족적 단결을 저해시키기 위하여 뿌리고 심어 놓은 여러 가지 정신적 독소의 잔재가 소멸되지 못한 까닭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법으로 전 국민의 반성을 제시합니다.

“왜적의 통치가 끝난 직후의 과도 혼란 시기에 처한 우리는 자기의 일상 행동에 있어서 비록 무의식적으로도 이러한 독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항상 반성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1947년 친일잔재청산을 위하여 설립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강제로 해체됐습니다. 1949년 백범은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을 맞고 서거했습니다. 일제가 심어놓은 정신적 독소는 치료되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이어옵니다. 그 결과는 무반성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발뺌하고 우기는 국민이 많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비리가 밝혀졌는데도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하는 공직자도 무반성의 대한민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30년이 지나면 광복 100년이 되겠지요.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라고 반성하는 국민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일제가 심어놓은 정신적 독소에서 완치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