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틀에 잘 맞추는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했다. 다만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하니까 했을 뿐. 튀는 학생도 아니었다. 일부러 앞에 나선 적은 없다. 수업시간에 책이라도 읽게 되면 얼굴은 시뻘게지고 가슴은 달음박질쳤다. 반장이나 부반장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평범했던 황형식 군(19, 경북 문경)이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특별한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사진전을 보기 위해 9월 5일 서울을 찾은 형식 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경북학습관 황형식 군

"작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벤자민페스티벌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성장스토리를 발표하는 걸 보면서 충격받았어요. 나랑 같은 나이인데, 그 아이들은 벤자민학교를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정해서 해나가고 있더라고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보였어요."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 말고,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선택하고 창조해내고 싶었다. 형식 군은 끈질긴 설득 끝에 부모님의 동의를 구하고 올해 3월 벤자민학교 2기에 입학했다.

국내 최초 완전자유학년제를 실시하는 대안학교인 벤자민학교 입학을 위해 형식 군은 올해 2월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틀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익숙했던 형식 군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먹었던 마음은 딱 하나. '뭐든 해보자!'

형식 군은 3월에 입학하고 6개월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했다. ▲5월(2박 3일) 경북 문경~부산 300km 자전거 국토종주 ▲7월(6박 7일) 경북 영천~충남 천안 300km 걸어서 국토대장정 ▲7월 말부터 SNS에서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메시지 공유하는 '화이트홀 프로젝트' ▲8월 초 이틀 동안 기획하고 연습해서 3천 명 앞에서 연극 공연 ▲8월(5박 6일) 전북 전주~부산 기차여행.

9월에는 벤자민학교 필수 과정인 '글로벌 리더십 지구시민캠프'를 위해 미국을 다녀올 예정이다. 그리고 10월에는 한 번 더 자전거 여행을, 12월에는 사진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학교'라는 틀에서만 벗어났을 뿐인데, 형식 군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

▲ 연극 공연을 준비한 친구들과 함께

"3월에 입학했을 때는 방황했었어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요. 지금껏 시키는 대로만 해왔는데, 갑자기 마음껏 해보라고 하니까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5월에 했던 자전거 국토종주에요.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돌발상황이 정말 많았어요. 잠은 어디서 자고, 밥은 어떻게 먹을 것인지, 지금 내 몸 상태는 어떤지, 얼마나 갈 수 있는지 등등. 벤자민 경북학습관 호영이와 둘이서 갔는데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책임감이 무척 커졌어요."

무엇이든 도전하고 경험하고 있는 형식 군이지만, 예전의 자신을 돌이키며 스스로 "시작이 힘든 아이였다"고 말했다. 해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컸다. 겁도 나고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무엇이든 첫발을 내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벤자민학교에 입학원서를 쓰고 '선택한 것만으로도 변화한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러고 나서 형식 군은 무엇을 하든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작년 11월 원서를 낸 뒤로는 '나는 이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입학생이니까 인성영재의 5대 덕목(집중력·인내력· 창조력·책임감·포용력)을 갖춰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냈어요. 그때부터 자부심이 느껴지면서 머뭇거리고 미루던 습관이 많이 고쳐졌어요.

요즘은 무서워서, 두려워서 미루는 대신에 그냥 해봐요. 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괜찮다고요. 막상 하다 보면 내가 즐겁게 잘해낼 거라는 걸 아니까."

▲ 벤자민학교 경북학습관 친구 7명과 함께 나섰던 '내일로 기차여행'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벤자민학교 경북학습관 대표인 형식 군은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두루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이날 사진전을 보기 위해 형식 군과 함께 서울을 찾은 권미정 양(18)은 "애들을 엄청 챙겨요. 리더로 모두 형식이를 인정해주고 많이 의지하는 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우중충했어요. 감정조절도 정말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주변에서 밝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마음을 보는 힘이 생겼어요.

리더십은 저도 몰랐던 부분이에요. 일반 학교 다닐 때는 주변에 챙길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친하지 않은 이상, 혼자 공부하고 시험치고 각자 알아서 하는 게 학교니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됐고요.

벤자민학교에서는 계속해서 자기를 표현하게 해요. 사람들 앞에 서게 하고 말하게 하죠. 그러면서 저도 몰랐던 저의 여러 가지 면을 많이 발견하고 있어요."

▲ 출사를 나온 형식 군과 김형탁 멘토(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전 KBS 영상제작국장)

형식 군은 세상을 만나면 만날수록 자기 안의 새로운 문을 열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꿈에 대한 고민이 부쩍 많아졌다. 예전에는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차원이었다면, 요즘은 사람을 만나 상담하는 것도 좋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좋다. 한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다양한 진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어요. 사진가가 되고 싶은 마음, 레크레이션 강사, 심리상담사, 한옥 건축가 등등 10년 뒤에 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분명한 건 뭘 하고 있던 기대된다는 거에요.

그리고 세상을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앞으로 남은 벤자민학교에서의 6개월은 검정고시와 수능을 위한 공부도 체계적으로 하면서 책도 많이 읽고 싶어요. 내면을 다지는 시간이 되도록."

마지막으로 형식 군에게 벤자민학교에 대한 형식 군만의 정의를 부탁했다.

"저에게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인생공부입니다.
10년 뒤에나 할 수 있을 법한 일들, 어쩌면 10년 뒤에도 생각 속에서만 하고 있을 일들을 저는 지금 경험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또 다양한 생각, 고민도 깊이 해보기도 하고요. 인생공부를 하는 멋진 학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