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은 '고시촌'이라는 독특한 공간이다. 도림천 건너편 산등성이를 빽빽한 건물로 가득 메운 신림9동(현, 대학동)에는 ‘신림동 고시촌’이 자리하고 있다. 고시촌이 번성하던 90년대엔 주민의 과반수이상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고시 준비생들이었고, 주민 상당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시 관련시설과 각종 상권에 종사하며 신림동을 ‘고시촌’이라는 특성화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신림동은 서울의 한 작은 동네이지만, 여기엔 서울이 겪어온 역사의 큰 흐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1960년대 서울의 급성장에 따른 강제철거와 이주, 1975년 서울대학교의 이전, 1980년대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과 입신의 열망은 이곳 신림동이란 공간에서 교차되어 나타났다.

▲ 신림동 고시촌 언덕길. <사진=서울역사박물관>

관악산 기슭에 위치한 탓에 나무가 무성하여 ‘신림(新林)’이라 불렸던 이 일대는 의성김씨(자하동) 등 여러 집성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1960년대가 되자 서울시는 도시개발을 위해 도심의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는 이들 중 일부를 변두리였던 신림동 일대에 이주시켰다. 이에 용산 해방촌, 청계천, 한강 주변, 이촌동, 공덕동 등에서 떠나온 철거민들은 황량한 이곳을 또 다른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1960년대 신림동 천막촌. <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75년 2월,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가 신림동으로 이전·완료되면서, 신림동은 ‘빈민촌’이 아닌 ‘대학동네’로 새로이 변모하게 되었다. 1980년대가 되자 서울대학교에는 관악세대라 불리는 학생 운동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독재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화가 뿌리내린 시민사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신군부 집권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학교 정문과 신림동 일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벌어졌다.

'신림동 고시촌'은 한때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의 땅으로 충실한 역할을 해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의 고시생들이 몰려들어 최전성기를 누렸던 이곳은 꿈을 위해 잠시 젊음의 화려함을 유예해 둔 우리시대 청춘의 모습을 잘 증명한다. 

▲ 고시촌 독서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

 하지만 이제 신림동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2008년 로스쿨 도입과 2017년 사법시험 폐지로 인해 고시촌을 떠나기 시작한 고시생들을 대신해 '1인 가구'라 불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신림동은 2008년 로스쿨제도 도입, 2017년 사법시험 폐지 등으로 인해 많은 고시생들이 떠난 상태다. 때문에 이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설들이 폐업을 하거나 규모를 축소한 한 상태이며, 이곳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주민과 상인들은 경제적 침체를 겪고 있다.

▲ 1인분씩 잘라서 파는 과일 가게.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신림동의 수많은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떠난 빈자리를 각종 국가고시 준비생을 비롯하여 취업준비생, 외국인유학생, 직장인, 저임금 노동자, 기초생활대상자 등 다양한 ‘1인가구’가 채우고 있다. 타 동네에 비해 저렴한 집세와 생활물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이유이다.

2015년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시 관악구로 그 중 신림동은 한국에서 25~34세 청년층의 분포가 많은 곳이다. 아직 남아 있는 고시 준비생 외에도 불안정한 고용, 실업, 학업, 취업 준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에서는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서울의 독특한 도시 공간 역사와 그 속에 담겨있는 청년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오는 9월 11일(금)부터 11월 8일(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신림동 청춘–고시촌의 일상'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특별한 동네의 형성과 변천사를 배경으로 젊은 세대의 삶과 한 동네의 성격이 어떻게 시대상황과 만나 적응하고 변화해 가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고시촌 일대를 연출하였다. 고시생의 일상을 사진과 영상 등 관련 유물을 통해 관람객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시촌 곳곳에서 펼쳐지는 고시생의 24시간 수험생활, 고시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고시촌 괴담, 선택의 기로에서 남거나 떠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는 고시생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다.

 독특한 공간의 역사를 간직한 채, 형태는 달라도 미래를 향한 열망과 인고의 공간으로 충실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우리시대 청춘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토·일·공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은 휴관한다. 기타 문의사항은 전화 724-0274(www.museum.seoul.kr)으로 하면 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