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성장 스토리 발표 후 부부가 포옹하고 있다.

“여기에 오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신 때문이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사과하지 못할 것 같아서. 여보, 정말 미안해."

"한평생을 사랑하며 살겠노라!” 맹세하며 결혼했지만,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남이 님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었어도, 늘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었기에 밉고 섭섭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나둘 쌓인 감정에 가슴이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갈라졌어도 사랑하는 마음마저 놓을 수는 없었다.  

▲ 행복가정 5차 캠프가 지난 5일 충북 영동 송호수련원에서 열렸다.

행복가정 5차 캠프가 지난 5일 송호수련원(충북 영동)에서 열렸다. 지난 4월 첫 캠프를 시작으로 5개월간의 행복가정학교 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차시 워크숍이다. 캠프는 ‘이 생(生)이 다할 때까지 행복하세요’를 주제로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새출발을 결심하는 자리였다.

# 첫째 날 ㅣ 소통 & 화해 “미안하다. 그래도 사랑한다!"

역시 마지막 차시 캠프답다. 숙제 역시 역대 최고급이다. 우리 가족의 변화와 성장을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PT)으로 준비해서 발표까지 하라니! PT 문서작업보다 어려웠던 건 함께했던 5개월간의 시간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더도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볼 용기가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생각만큼 결과가 끔찍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대 그 이상이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돌아보니 참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철옹성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의 고집도, 아내의 냉랭함도 어느덧 봄날 햇살에 눈 녹듯 녹아내리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가족의 변화가 파노라마처럼 정리되기 시작했다.

▲ 캠프는 가족 성장 스토리 발표(위쪽), 부부 레크레이션(왼쪽 아래), 편지쓰기(오른쪽 아래) 등 소통과 화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의논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온 것 같다. 목표를 정해놓고 굽히기는 싫고, 뒤쫓아 오는 사람은 생각을 안 했다. 거기에서 오는 갈등이 굉장히 많았다. 내 의견에 따라오지 않으면 이혼하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막내로 사랑만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누구를 포용하고 이끌어주는 어머니 같은 기운이 없었다. 맏이인 남편은 그런 저를 받쳐주기 위해 많이 힘들어했다.” _ 조미실 씨

이날 조미실 씨는 프로젝트 발표에서 가족 간의 갈등을 극복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조 씨는 “행복가정캠프를 한 차시씩 받을 때마다 쌓였던 뭔가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것 같았다”며 “내 남편이기 전에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예전에는 옆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요즘은 말을 안 해도 있는 것 자체가 편안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발표에 이어 편지쓰기와 세족(洗足)을 통한 소통과 교감의 시간이 마련됐다. 쑥스러워 미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속내를 한 자 한 자 편지지에 옮겨 적었다. 왠지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가슴 한구석에 쌓아놓은 서운함이 올라와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안덕환 씨는 “나는 집사람한테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지를 써본다. 평상시 ‘여보', ‘당신',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해봤다”며 “캠프 기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그동안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며 아내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 캠프에 참가한 부부들은 세족식을 통해 가슴 속에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자네에게 가졌던 많은 감정도 하나씩 물과 같이 씻어내리네. 자네가 나에게 가졌을 원망과 미움도 이 물과 함께 씻어내리게. 우리 서로 풀어보세."

세족식은 살아온 세월의 깊이 만큼 굳게 응어리진 감정들을 씻어내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발을 씻기고 있자니, 늘 무시당하는 발을 대하듯 내가 아내(남편)를 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올라왔다. 이제는 세숫대야 물에 담긴 저 장미꽃잎처럼 그대를 귀하게 대하리라, 은은한 아로마 향기처럼 행복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정을 만들어나가리라 다짐했다.

# 둘째 날 ㅣ END & AND “우린 지금부터 시작이야!"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듯이 화해도 마찬가지다. 시기를 놓치면 영영 사이가 멀어진다. 그렇다고 화해가 문제 해결의 끝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관계를 잘 유지해나갈 것인가’이다. 이에 행복가정인성교육원 권영주 원장은 대화의 3원칙인 '내가 먼저 들어준다’, ‘따뜻하게 말한다’, ‘화날 때는 숨 쉬고 존댓말을 한다’를 권했다.

또한, 무엇보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로의 잘못을 놓고 시비(是非)를 따진다면 평행선 같은 불화를 끝낼 수 없다는 말이다. 권 원장은 “여러분은 1차에서 5차까지 오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연 것”이라며 “사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말로 결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하나를 잘못하고 상대가 열을 잘못했어도 자신을 먼저 보라”고 조언했다.

▲ 다른 가족의 발표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부부들.

캠프에 참가한 부부들은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약속을 정했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면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준에서 말이다. ‘가족 카톡방 운영하기’,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의 날 만들기’, ‘부부끼리 존댓말 쓰기’ 등 가정마다 안고 있는 문제가 다양한 만큼 아이디어도 다채롭게 쏟아졌다.

이들은 가족 약속을 서로 발표하고 공유하며 진정 행복가정으로 거듭날 것을 맹세했다. 이어 새로운 가족으로 태어났음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캠프장은 순식간에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변신했다. 레드 카펫이 깔리고 샴페인과 케이크, 다과가 준비됐다. 인생의 동반자로 거듭남을 기념하며 사진도 찍었다. 캠프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이들은 새로운 시작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 행복가정 캠프 파티 후 새롭게 태어난 의미로 고영주(왼쪽), 김성호 씨(오른쪽) 부부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성호 씨는 “행복가정 캠프를 잘 마무리해서 기쁘고 행복하다. 이 캠프에 올 때 세운 목적을 이룬 것 같다”며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고 했다. 김 씨 아내 고영주 씨는 “캠프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가족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행복가정은 '?!,.’(물음표, 느낌표, 쉼표, 마침표)이다. 행복가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시작했고, 거기서 많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 캠프가 끝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만의 행복가정캠프는 계속될 것이다. 때로 힘이 들 때는 쉬어가기도 할 것이다.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캠프를 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