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문화대국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16] 문화대국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 원암 장영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장
  • sierra@ikoreanspirit.com
  • 승인 2015.09.0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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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할배가 들려주는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이야기

백제의 건국시조 온조대왕(?년~28년)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소실인 ‘소서노’의 아들이다. 주몽의 큰아들 유리가 졸본 부여(북부여)로부터 아버지 주몽을 찾아온다. 주몽께서는 평소 약속대로 유리를 태자로 봉한다.

이에 불편해진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 ‘온조’와 함께 새로운 나라의 터를 찾아 마한 쪽으로 남하한다. 형 ‘비류’는 미추홀(彌鄒忽, 지금의 인천)에, 동생 ‘온조’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 지금의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 각기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

▲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 (원암 장영주 作)

“내가 어제 순행하는 중에 한수(한강)의 남쪽을 보니 토양이 비옥하였다.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영원히 평안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말하니 ‘서울(한양)’을 도읍지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온조대왕인 셈이다.

형 ‘비류’가 죽자 그 신하와 백성이 모두 위례성의 ‘온조 대왕’의 품으로 옮겨왔다. 열 명의 가문이 바다를 건너왔다는 뜻으로 ‘십제(十濟)’라고 칭하였다가 차츰 나라가 커지자 ‘백제(百濟)’로 국호를 바꾼다. 백재는 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 때 마한(馬韓) 전역을 통합한 뒤 크게 발전하였다.

백제의 수도를 ‘부여’라고 이름 지은 것은 부여 출신인 주몽이 자신들의 조상임을 잊지 않기 위한 결심이다. ‘부여’는 현재 몽골 내 지역 중 하나인 '부이르(BUIR)‘ 지역명과 음과 비슷하고 지금도 ‘부이르 호수'가 있다. 부여, 비려, 비류 등이 ’부이르‘에서 빌려온 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동명(주몽)이 살았다는 ‘흘승골’이 몽골의 ‘할힌골’ 강이며, 비류는 몽고의 부이르 호수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몽골 과학원 ’수미야바타르‘ 교수)

“몽골 공화국 동남부 ’다르강‘ 지역에는 고구려성으로 보이는 3개의 토성이 있고, 부이르 호수 주변의 토성이 고구려 성으로 추정된다는 한국과 몽골의 공동학술조사단 보고(1992년)도 있다. 이는 고구려가 이 지역에 토성을 쌓고 경영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할흐곰솔‘ 지역에 석인상이 있는데 이 석인상이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이라 구전되고 있다.” (몽골 신문기사)

이처럼 몽골 대륙에서 출발하여 고구려가 생기고, 고구려로부터 백제가 생긴 것이다.

온조대왕에 의하여 건국된 백제는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 멸망할 때까지 역대 서른 한 분의 왕에 의하여 6백 년 이상 중국과 월남을 넘나들며 번창하였던 강력한 해양강국이 되었다. 『남제서』에는 ‘서기 490년 위나라가 기병 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했다가 백제의 제24대 동성왕(東城王, 재위 479∼501)에게 크게 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성왕의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모대(牟大)’이다. 동성왕은 공훈을 세운 백제의 장군들에게 왕이나 후(候), 태수(太守) 등 관작을 줄 것을 요구한다. 특히 ‘목간나(木干那)’라는 인물은 성과 배를 부순 공이 있는데, 두 나라 사이에 대규모 해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북위는 중국의 화북 지방에 있었다. 더욱이 백제가 태수 직을 요구한 광양, 광릉, 청하 등은 현재의 중국 본토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열전의 최치원(崔致遠, 857~?) 전(傳)에는 ‘백제의 전성기에는 강병이 1백만이며, 남으로 오(吳)와 월(越)을 침범하고, 북으로 유연과 제(齊)와 노(魯)를 흔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는 특히 일본의 문화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문자, 학문, 농경 등 고급문화의 전파자요, 지도자였다. 일본어의 ‘사무라이’는 백제의 ‘싸울애비’가 원형이라고 한다. 일본인은 지금도 백제를 ‘구다라(くだら)’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큰 나라’란 뜻이다.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下らない)’라는 형용사도 있는데 대체로 ‘하찮고, 시시한 물건(사람)’을 뜻한다. 직역하자면 ‘(백제의 것이 아니므로) 하찮고 시시하다’라는 의미이다. 일본인들이 백제의 것만을 진짜로 인정했던 오래된 습관이 지울 수 없는 말로 남아 있는 것이다.

2001년 일본의 천왕 ‘아키히토’는 68세 생일의 기자 회견에서 ‘천황의 모계 혈통이 백제계’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천왕의 가슴속에 눌려 있던 자신의 혈통에 대한 고백에 대하여 일본의 언론은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이 백제계에 의하여 경영된 사실은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온조 대왕에 의하여 건국된 남부여, 즉 백제는 후대에 번창하여 일본까지 경영하였다. 그러나 외세를 등에 업은 신라의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는 절멸되고, 9년 뒤에는 고구려마저 멸망한다. 그러고도 신라는 한반도를 통째로 먹으려는 당나라와 국운을 건 전쟁을 하게 된다. 한 번,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국토는 반드시 소멸하고 만다.

지금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때 “정신 차려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고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의 온조대왕께서 간절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

(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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