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경영의 꿈은 나의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그 깨달음은 이렇다.

“우리는 깨달을 것이 없다. 이미 깨달음 속에 존재하나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뿐이다. 깨달음은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느끼는 것 속에 존재 한다.”

깨달음은 선택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그 실천이 바로 힐링이다. 사람들은 깨달음에 대하여 오래된 환상을 갖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항상 묻는다. 당신의 추구하는 깨달음의 가치는 무엇이며, 깨달음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깨달음 자체는 원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깨달음이 환상이라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또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단학을 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까.”
“깨달으면 항상 기쁩니까.”
“깨달으면 항상 마음이 편안합니까.” 또 어떤 사람은
“깨달은 입장에서 볼 때, 돈이라는 것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라고도 묻는다.

돈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이지 성인이 할 질문은 아니다. 깨달음에 대한 환상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지독한 환상에 빠져서 이런 질문들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모두가 깨달음을 특별한 감각으로 알기 때문이다. 깨달음 앞에서는 자신들의 앎이 모두 부정되고 자신들의 생각이 전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깨달음이 굉장한 것이 되어서 자신들은 사고가 촌스럽고 타락했으며, 스스로 더럽혀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깨달음의 세계를 이 세상에 없는 완전히 특수한 어떤 의식의 세계로 기대하는 것이다. 평화롭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자신은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에 대한 오랜 구별과 분별이 오늘의 그와 같은 큰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며 묻는다.

“이것이 보입니까. 이것이 몇 개입니까.”
“한 개입니다.”
“나도 하나로 보입니다.”

그것이 진리이다. 다 같이 보여야 진리인 것이다. 당신도 하나로 보고 나도 하나로 본다. 여러분과 내가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두 개라고 말하기를 바란다. 왜? 깨달음의 의식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이고 듣고 느끼는 것 이외에 깨달음은 없다. 만약 우리가 보는 것을 무시하고 듣는 것 느끼는 것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느끼는 것을 무시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천 년 이상 내려왔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의 환상으로 당신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하나의 손가락을 펴서 그것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거래가 될 수 있는 진리이다. 그래야 깨달음을 활용할 수 있다. 그동안 알려진 깨달음이나 구원은 거래할 수가 없었다. 전달되고 주고받을 수가 없다면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거래할 수 있는 깨달음만이 의미가 있다. 이 세상은 주고받음의 과정을 통해서 생산하고 창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상식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그 깨달음이 쓰이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좋은 선택은 깨달아서 되는 일이 아니다. 깨달음 자체는 원래 값이 없는 숫자인 영零과 같으며 공空이다. 깨달음은 어떤 인위적인 노력도 시도되지 않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그래서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마치 물속에 들어갔을 때 힘을 다 빼고 자연스러워진 상태에서 부력을 느끼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이천 년간 인류가 헤매고 찾던 깨달음의 실체이다. 그러니 이제는 깨달음을 선택하자. 아주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무엇이 선善이며 악惡인지를 아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사심으로 집착하여 보지 않는 것이다.

좋은 선택을 하는 일이 중요하다. 깨달음 자체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선택은 성품에 달린 것이다. 깨달음과 성품은 다르다. 성품은 습관이며,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좋은 성품은 좋은 생활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성품이 좋아지면 깨달음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없는 깨달음이라면 그 깨달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구경영은 그러한 성품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 깨달음의 대중화가 지구경영이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제뇌교육협회 회장
뇌교육 창시자
국학원 설립자
한국인 최초 美 4대 일간지 베스트셀러 작가
www.ilch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