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국에서 ‘달인’이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노력해서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알고 보니 허세로 밝혀져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진정한 달인은 내공(內功)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오늘 소개하는 2명은 MC나 바둑이라는 경지를 뛰어넘었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기록을 세운 인물들이다. 오히려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깊은 통찰력을 주니, 인생의 멘토이자 고수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들의 가르침을 3만 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온전히 얻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최장수 MC가 전하는 하루의 ‘힘’

오민석 단국대학교 교수가 관찰자 시선으로 펴낸 ‘송해 평전-나는 딴따라다(352쪽·1만3800원·스튜디오본프리)’ 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89세의 나이로 최장수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이끌고 있는 송해는 국민 MC이자 거인이다. 

그는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가족을 이북에 두고 실향민으로 살아야 했던 남한의 삶은 생존고투라고 봐야 한다. 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철저한 프로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방송연예계의 수명이 짧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의 장수비결은 무대 뒷모습에서 드러난다.

“‘내 직업을 천직으로 아는 사람은 같은 무대에 백 번 나와도 백 번 긴장하며 관객이 단 한 명이 있더라도 만 명의 관객이 있다는 자세로 대한다.’ 그는 공연 40분 정도 전에 청심환까지 복용해가며 그 '마음을 진정시키고' 관객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무대 뒤에서 지켜본다. 그에 따르면 관객들이 천천히 들어오는지 갑자기 몰려오는지 그 상황을 보아야 그날 그 관객들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단 한 번도 동일하지 않다.”

그의 하루는 단순하다.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로 출근하고 점심을 먹고 연예인과 소일거리로 마작을 둔다. 오후 4시에는 인근의 목욕탕을 다녀오고 6시가 되면 사무실 문을 닫는다. 8시에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서 아홉 시 뉴스가 끝날 즈음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난다. 송해를 두고 ‘낙원동의 칸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가도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녹화 전날 그 지역에 도착하고 여관에 짐을 부리자마자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들 및 악단장과 동네 목욕탕에 가고 그것이 끝나면 잠시 여관에 쉬었다가 저녁 식사 후 간단한 반주 후에 잠자리에 든다. 새벽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면 정확히 일어나 아침 식사를 반드시 한다. 오전 아홉 시에 출연자 리허설이 시작되는데 일곱 시 반이면 정확히 녹화장에 가 있다. 그러고 나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라온다. 이 패턴 역시 예외 없이 항상 그대로 반복된다. 선생은 이런 정해진 생활의 패턴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는 오 교수가 지적한 대로 무대 위에서 나이를 무색케 만드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불규칙한 시간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쌓아올린 내공은 최장수 MC라는 기록을 내고 있다.

 

기술이 아니라 인성(人性)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 조훈현이 펴낸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264쪽·1만5400원·인플루엔셜)’은 바둑을 모르는 문외한이 읽더라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는 다섯 살부터 바둑 두는 아버지에게 훈수를 둔 바둑신동이었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세계 일류기사들을 차례로 꺾었다. 그의 성공담은 수많은 신문과 칼럼을 통해서 찾을 수가 있다. 그보다 조훈현을 성공으로 이끈 스승의 가르침은 인성교육으로 주목할 만하다.

일본 바둑의 전설, 세고에 켄사쿠 (瀬越憲作, 1889~1972)는 평생 3명의 제자만 두었다. 중국인 오청원, 일본인 하시모토, 한국인 조훈현이다. 스승에 대해 조훈현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9년 동안 데리고 살면서 정말로 당신의 모든 걸 나에게 주셨다. 바둑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 바둑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그 정신세계까지 다 주셨다.”

마치 도인(道人)이 되는 과정이랄까? <신성을 밝히는 길(한문화)>에서는 옛날에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밥하고 나무하는 과정을 3년씩 하면서 마음을 닦아야 3년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총 9년이고 나머지 1년은 자기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조훈현은 스승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 바둑을 대하는 모습, 정갈한 차림새, 규칙적인 생활을 직접 보면서 자란다. 특히 스승의 삶을 통해 바둑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성(人性)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야.”
“사람이 되려면 인격, 인품, 인성을 모두 갖춰야 해.”
“답을 주는 건 스승이 아니야, 그냥 길을 터주고 지켜봐 주는 게 스승이지.”

조훈현은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시행하는 인성교육진흥법을 두고 하는 말처럼 인성교육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한다.

“인품과 인격을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매너는 가르칠 수 있어도 인품은 못 가르친다. 가르치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인성, 인품, 인격은 그냥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제자가 보고 배우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난한 부모는 돈이 없는 부모가 아니라 물려줄 정신세계가 없는 부모라는 점이 뼈아픈 충고로 들린다. 그 외 창의력, 통찰력, 성찰력, 예지력, 체력, 집중력 등을 기르는 항목이 1단부터 10단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매년 책을 펴내고 강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독자를 대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훈수가 많다. 그보다 인생의 길을 열어준 스승이 누구일까? 오늘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그것이 궁금하다. 그의 인성은 부모와 스승의 정신적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자랐을 것이다. 또 남들처럼 보내지 않은 24시간의 노력이 한 달, 1년, 10년으로 쌓이면서 무대 위에서 강연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 2권의 책을 험난한 인생의 항로를 이끄는 데 힘이 부치는 독자의 에너지로 삼는다면 아깝지 않은 투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