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는 흥미진진하다. 이런 역사이야기는 설화라고도 하고 설화에는 신화, 전설, 민담이 있다. 이것은 이야기에도 격이 있는 것과 같이 신성한 이야기는 신화이고, 영웅의 이야기는 전설이며, 평범한 백성들의 이야기는 민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 즉 설화의 시작은 항상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로 시작되는데, 이 시작이 문제라면 문제다. 왜 문제냐고 하면 호랑이는 오래 전, 6천만 년 전부터 이미 지구상에 생존했으나 담배 피던 시절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가면서부터이니, 우리나라에 아무리 빨리 들어온다고 해도 450년을 넘지 않는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우리가 500년 이상 된 과거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5백 년 전에는 조선인들이 있었고, 일천 년 전에는 고려인들이 있었으며, 이천 년 전에는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들이 함께 있었다. 또한 5천 년 전에는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이 존재했었으며, 따라서 우리 선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우리 후손은 오랜 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상한선을 500년에 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사고가 요청된다. 이렇게 시각과 사고가 바뀌면 우리 문화유산 중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무형문화재와 같은 정신문화유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민성욱 박사

그런데 위의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민화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이고 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 민화 속 이야기는 바로 조선시대 민화인 ‘이묘봉인도(二卯奉寅圖)’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묘봉인도’는 제목을 그대로 풀어 쓰면 ‘두 마리의 토끼가 호랑이에게 봉사한다.’는 뜻이 된다. 12지지와 동물을 적용시키면 묘(卯)는 토끼를, 인(寅)은 호랑이를 뜻한다.

그럼 여기서 민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 역사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를 민화라고 말한다. 민화가 사람들의 본능적인 회화의 의지와 욕구를 표출하며, 종교와 생활 습속에 얽힌 순수하고 유치한 대중적인 실용화라고 정의할 때, 민화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암벽화, 청동기시대의 공예품, 삼국시대의 고분 벽화와 전(塼), 고려·조선 시대의 미술 공예품에 민화와 같은 그림과 무늬가 많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전(塼)이란 점토를 틀에다 찍은 다음 건조하거나 구운 벽돌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암벽화의 동물 그림, 고구려 벽화의 청룡ㆍ백호ㆍ주작ㆍ현무와 같은 사신도(四神圖), 해·구름·바위·산 등의 장생도(長生圖), 수렵도, 백제의 산수문전(山水文塼)의 산수도 등은 우리 민화의 연원을 밝힐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 민화 속에는 선조들의 꿈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즉 우리 민화를 통해 우리 역사 속 인물들의 정신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호랑이와 함께 등장하는 두 마리 토끼는 오늘날 중국으로 불리는 대륙의 상고시대에 있었던 하우의 전설이 담겨 있다. 하우가 일년을 열 달로 나누면서 동물들에게 월 이름을 지어주었다. 1월은 임금이 바른 마음으로 정사를 돌보리라 다짐하는 달이라 ‘바를 정(正)자’ 정월이라 했다. 그 영예로운 첫 달이 인월(寅月)이고, 그 상징동물이 호랑이였다. 그 좋던 시절에 2월인 묘월(卯月)을 맡은 두 마리의 토끼가 지극한 존경을 담은 길고 긴 장죽을 호랑이에게 물려준다. 그것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그 좋던 세월이었고 오늘날 민화에서 ‘이묘봉인도(二卯奉寅圖)’라는 형식으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호랑이와 토끼가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어느 겨울이었다. 토끼가 길을 가던 중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했다. 그때 토끼는 자신을 살려주면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해주겠다고 호랑이를 설득한다. 호랑이는 토끼의 혓바닥에 놀아나서 꼬리를 낚시줄처럼 물에 담그고 황금어장에 대한 꿈에 부풀지만, 결국 호숫물이 꼬리와 함께 꽁꽁 얼어버리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토끼는 호랑이를 비웃으며 도망치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야기 속 토끼들이 엄청난 꾀보에 ‘수려한 말솜씨’로 생명을 보존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토끼는 조금은 미련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토끼는 천적인 야생동물에게 잡혀 큰 상처를 입고 간신히 도망치더라도 곧바로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건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습성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동물들도 그런 ‘회귀성’을 가지고 있지만, 멧토끼의 경우 생존에 위협이 될 만큼 빨리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경험 있는 사냥꾼은 토끼가 돌아올 무렵 다시 그 자리에 찾아가 토끼를 생포한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과 유사한 고사성어가 게으른 농부의 토끼 잡기를 의미하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이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낡은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줄 모르는 사람을 뜻한다. 이것은 멍청한 토끼와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에 잘 대응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토끼는 꾀보다는 월등한 능력으로 생존해나가고 있다.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산을 향해 내달리는 토끼를 상상해보면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우리가 ‘도망치다’를 속되게 이르는 ‘토끼다’는 말도 토끼가 재빨리 달려가는 모습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묘봉인도’라는 민화를 보면 호랑이가 긴 장죽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고, 토끼 두 마리가 옆에서 담배시중 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토끼 한 마리는 호랑이가 편하게 담배를 피도록 장죽을 잡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호랑이가 담배 심부름을 시키면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듯이 눈치를 보고 있다. 여기서는 앞서 본 것처럼 호랑이를 골려주는 토끼가 아니라 백수의 왕인 호랑이를 정성껏 보필하는 토끼의 모습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묘봉인도’와 같이 우리나라의 민화나 이야기에는 호랑이와 토끼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우나 늑대, 너구리 등 다른 동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토끼와 호랑이가 짝으로 나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12지지에서 인(寅) 다음에 묘(卯)가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이묘봉인도’ 속 호랑이와 토끼처럼 호랑이뒤에서 토끼가 보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토끼가 호랑이를 골려주듯 묘(卯)월의 춘풍이 인(寅)월의 맹렬한 추위를 비웃고 내쫓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호랑이와 토끼 이야기에서 우리는 선조들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였을까? 호랑이는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고 토끼는 지혜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역사는 유구하고 문화는 찬란하다. 그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와 문화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러한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삶의 중심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국학이고 국학이 친근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