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停戰). 잊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쟁을 멈춘 상태’라는 것을.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저 교과서나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의 말씀으로 전해 듣는 ‘이야기’일 뿐, 실제 전쟁을 체감해본 적은 없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난 주말을 보내면서 내가 잠시 전쟁을 멈춘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는 포털 사이트에서 수시로 보내는 속보 알람이 울렸다. 남북이 모두 ‘준전시 상태’로 돌입했다는 소식, 전격적으로 남북의 고위급 접촉이 이뤄졌다는 소식, 23일 북한 잠수정 70%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우려 섞인 소식도 들려왔다.

우리 쪽의 박근혜 대통령, 북측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제외한 최고위 인사들이 만나 협상을 벌이고 있다. 우리 쪽에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는 황병서 인민국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비서가 나섰다.

▲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한 측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22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첫 '2+2 고위급 접촉'을 가졌다. [사진=통일부]

수석대표를 맡은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국장은 각각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는 이들이다. 그만큼 이번 협상에 대하여 남북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2일 마라톤협상에 이어 23일 오후 재개된 것 역시 이번 만남을 통해 양측이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보고자 한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21일, 23일 모두 밤을 새워 진행된 양측의 접촉은 이렇다 할 발표 없이 '마라톤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 측이 목함지뢰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데 반해, 북측에서는 지뢰는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니 대북 확성기 방송을 먼저 중단하라는 대치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사과'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네 차례에 불과했다. 그 네 번 역시 유감 표명 수준의 사과였지만 말이다.

첫 사과는 1972년 이후락 당시 우리 중앙정보부장이 7·4 공동성명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김일성은 1968년 발생한 1·21 청와대 습격 사건을 거론하며 직접 유감을 표명했다.

두 번째 사과는 1976년 북한군이 도끼를 휘둘러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다. 당시 북한은 황급히 김일성 명의의 사과문을 전달해왔다. 세 번째는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네 번째는 2002년 2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의 유감 표명이다.

분명한 것은 사과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전을 끝내고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대화의 국면이 열렸다는 것이다. 천안함 포격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면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5·24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했고, 박왕자 씨 사건을 사과하면 금강산 관광도 재개할 뜻을 밝혔다.

이번 목함지뢰 사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사과가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대화를 통해 좀 더 발전된 단계로 관계를 개선하고 북측과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 공은 북으로 넘어갔다. 이번 마라톤협상의 결과를 주목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