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어떻게 전시한다는 것일까, 지난해 설립 당시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문영호)은 오는 9월 6일까지 소설 속 한글의 맛과 느낌을 찾고자 특별전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 소설 속 한글’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물이 소설책이 아니라 소설 속 문장이 주요 전시물이라는 점이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소설을 선정하여 문장에 담긴 우리글의 맛과 특성을 보여준다.

▲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 소설 속 한글 展' 전시장 입구. (사진=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너 나 사랑하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일까? 너를 나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일까?

조사가 빠진 한글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인지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게 한다. 기자 역시 수년간 글을 써왔지만, 매번 ‘은는이가’ 앞에 무릎 꿇는다.

“나는 내 모국어의 조사를 증오한다. 조사를 읽지 않으면 어떠한 논리 구조나 표현에도 도달할 수 없다. 조사를 작동시켜만 비로소 문리가 통하고 사유가 전개되는 이러한 언어가 나의 모국어인 것이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中에서-

소설가 김훈 역시 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을 쓰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두 글자의 조사만으로도 문장 전체의 의미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기에 소설가는 고투를 벌인다. 그리고 ‘소설 속 한글’ 전시에서는 이러한 소설가의 고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 김훈의 '자전거'에서 글이 나오는 미디어 아트. 이곳에서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각종 물건들을 소개한다. (사진=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소설가 배상민은 전시장에 마련된 공간에서 ‘여름’을 주제로 노트북에 직접 소설을 쓰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관 입구에는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쳐 쓰는 작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가 김중혁은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하는 자신의 글쓰기 모습을 영상으로 직접 촬영했고, ‘비가 내리면’으로 ‘빗줄기가 내리면’으로 거듭 바꿔가는 김애란의 컴퓨터 화면이 비춰진다.

‘소설 속 한글’ 전시는 결국 소설 쓰기란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과정으로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펜 심 580여 개, 스마트폰 등 소설가의 다양한 필기구도 전시

소설가들의 다양한 집필 방식도 생생하게 전시했다.

소설가 방민호는 최근 심청전을 재해석한 《연인, 심청》을 발간했다. 그는 연필이나 컴퓨터 자판이 아닌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글을 썼다. 지인에게 문자메시지로 소설을 보내다가,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생각의 속도와 자판을 누르는 엄지손가락의 속도가 같아서 글을 쓰는 데 적격이다”며 자신의 필기도구인 스마트폰을 전시에 내놓았다.

소설가 조정래는 소설 ‘아리랑’을 쓰면서 단 하나의 펜을 사용했다. 하나의 펜과 잉크가 다 빠져나간 펜 심 580여 개가 전시된다. 그는 이들로 2만 장에 달하는 원고를 썼다.

▲ 조정래가 '아리랑'을 쓰면서 사용한 펜과 펜 심. (사진=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누구나 한 번쯤 밤새 소설을 읽고 벅차오르는 마음을 달래가며 아침 햇살을 마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소설의 힘은 바로 문장에서 나오는 것임을 전시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전시장 끝에는 ‘문장의 숲’이란 공간을 꾸며놓았다. 북카페처럼 조성된 곳으로 관람객들이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독서를 할 수 있다.

* 국립한글박물관(www.hangeul.go.kr)‘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 소설 속 한글’ 기획전
전시 기간 7월 21일 ~ 9월 6일까지, 관람비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