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Veteran)’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는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집안의 후광을 얻고 태어났으니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가집니다. 돈, 여자, 권력들이죠. 그는 미소를 잃지 않는 것 같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제든 형제들과의 상속 전쟁에서 자신이 누리는 지위가 뺏길지도 모르니까요. 

반면 강력계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아파트 대출금에 허덕이면서도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합니다. 야생마처럼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의 모습은 돈과 권력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서민에게 카타르시스(katharsis)를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두고 대기업의 자녀들이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갑과 을의 관계를 풍자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모두가 재벌 2세나 3세처럼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서도철처럼 평범한 집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돈과 권력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는 그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동료 경찰 앞에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かおㆍ顔:얼굴, 체면)가 없어?”라고 혼낼 수 있는 것은 자신만의 인생관이 확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를 지지하는 후원자들이죠. 오팀장(오달수), 미스봉(장윤), 윤형사(조연), 왕형사(오대환)는 위기 때마다 팀워크로 뭉칩니다. 광역수사대 총경(천호진)까지 말없이 밀어주니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서도철의 힘이 커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려는 조태오와 최상무(유해진)와는 다른 이유겠죠.
 
이처럼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힘은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1955년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833명이 태어났습니다. 미국의 학자들이 이들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카우아이 섬 종단연구’를 진행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에서 태어났으니 집안 환경이나 사회복지 모든 면에서 열악합니다. 그럼에도 고위험군에 201명 중에서 72명은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가인한 힘, ‘회복탄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회복탄련성>에서 “회복탄력성의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인간관계였다”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은 예외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명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직, 연애, 결혼, 육아 등을 포기한 세대라고 불립니다. 이제 부모세대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힘들다고 절망합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부산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삼포세대’나 ‘7포세대’와 같은 명칭은 기성세대가 붙인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학생의 관점으로 조사해보겠다고 열의를 나타냈습니다. 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절망이라는 프레임으로 젊은이들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회복탄력’이라는 프레임으로 응원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여덟 살에 고향을 떠나서 객지에서 지내는 인생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너는 선택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내일 교통사고로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은 등대처럼 비춰주는 ‘단 한 사람’이 아닐는지요? 그러면 좌절로 넘어져서 상처가 나더라도 훌훌 털고 일어설 것입니다. 두들겨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서도철의 눈빛이 그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