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최근 두 가지 화두를 들고 있는 듯하다. 하나는 전 국민을 두려움으로 몰고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고, 다른 하나는 7월 21일 인성교육진흥법의 시행으로, 인성을 회복하기 위한 진정한 ‘인성교육’이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상관없는 이 두 가지 사안은 가장 중요한 근본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 둘은 같은 원인에서 나온 다른 문제들이다. 해답은 늘 진리 속에 있으며 그 진리는 항상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바로 자연의 이치를 잊고, 대자연의 생명력이 주는 자연치유력을 상실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 오미경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

메르스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독감 정도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사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되었다. 같은 환경과 동일한 위험요소에 노출되어도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말이다. 주로 지병이나 나이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 것인데, 결국 메르스 사망자와 완치자의 운명은 ‘자연치유력’에 따라 판가름 난 것이다. 자연치유력은 생체가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하지 않아도 건강상태로 회복하는 힘을 말한다. 이는 자연의 일부인 생명체가 스스로 균형과 조화를 찾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자 하는 내적 질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연의 일부임을 망각하고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생활태도에 젖어 살고 있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 만성적 스트레스로 자율신경계가 망가지고, 결국 몸에 병이 나면 병원을 찾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서 자연이 주는 큰 혜택인 자연치유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자연치유력은 인간의 몸을 다스리는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보편적인 원리이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양자물리학의 원리를 빌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몸의 자연치유는 마음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장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치유력의 회복은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의 참다운 본성을 되찾는 것이다. 자연치유력의 회복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더 건강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스럽고 순수한 본질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조화의 감각 혹은 자재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생각하고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과 전체에게 이롭고 바른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감각과 판단 능력을 되찾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바람직한 인성교육’은 바로 이러한 성품의 회복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인성은 인간이 회복하고 도달해야하는 이상적인 인간다운 모습이며 성품이다. 에릭 프롬에 따르면, 건전한 사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인간성이 먼저 회복되어야 하였고, 또한, 맹자(孟子)는 참다운 인간성을 ‘양심’으로 표현하였는데, 양심의 네 가지 요인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당한 일을 보면 혐오하며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워하는 정의감인 ’수오지심(羞惡之心)‘, ‘나를 낮추어 남과 조화를 이루는 겸손함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아는 판단능력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들었다.

이러한 특성들은 태어나서 배운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 타고난 인간의 본성, 즉 선천적인 특성이다. 요즘에는 양심을 흔히 후천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맹자가 말한 양심은 전혀 다르다. 맹자는 후천적 교육에 물들기 이전에 정상적인 인간이면 누구나 갖춘 선천적 도덕능력을 양심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이러한 인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 본래의 성질로 돌아가면 된다. 이것이 인성의 자연치유력의 회복이 아닐까.

가장 이상적인 몸과 가장 이상적인 마음의 건강법은 자연치유력의 회복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연치유라는 복원력이 있어서 몸도 마음도 그 복원력을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건강할 수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의식이 지나치게 외부에만 몰두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보내는 내면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그 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방향을 틀자. 그곳에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이 함께 있다.

 

 

글. 오미경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