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문화재단은  성북예술창작터에서 나광호, 양미나, 이지선, 정수연, 최윤정 작가가 참가하는 ' 성북동기(城北同期)' 전시회를 8월13일부터 2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성북동기' 전시는 성북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성북예술동 신진작가 공간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가들의  첫 번째 전시이다.   전시 작품은  20여 점으로 입장료는 무료이다.

이 전시는 성북구에 있는 국민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 2학기 재학 중인 5명(나광호, 양미나, 이지선, 정수연, 최윤정) 동기 청년작가들의 전시이다. 모두 대학원의 실기실과 성북동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이다.

이들은 각기  나광호 : ‘Infandult’ [Infant + Adult], 양미나 : '사이공간' SPACELESS, 이지선 : 'Dynameis Forest', 정수연 : 'A Room of One's Own', 최윤정 : 'Ariadne's Load' 를 주제로 작업을 한다. 

작가는 어떤 고민을 하면 작품을 구상하고 창작하는지 직접 들어보자.


나광호 : ‘Infandult’ [Infant + Adult]

내 작업은 스스로에게 없는 것을 인정할 때,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열리고 형식의 확장이 가능한가를 실험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작업의 맥락을 관통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그린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지니는데 작업의 특징은 한눈에 파악될 정도로 분명하다. 작업을 대하는 태도도 인위성을 배제하고 투명하고 근원적인 태도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업에 사용되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조합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누구나 쉽게 알아보고 비교 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
2. 나의 제자의 것
3. 선험이 존재하지 않는 저학년의 관찰력
4. 제한 없는 상상력
5. 부담감 없이 분출하듯 그린 것
6. 틀린 것, 덜 그린 것, 못 그린 것
7. 제자의 허락을 득한 것

▲ 나광호 Postman Joseph Roulin oil on canvas 162x130.3cm 2015. <사진=성북문화재단>

결국 내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 되는 것 나에게 없는 것이 되는데 이러한 지점들이 회화성을 담보하고 흥미를 일으키며 매력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는 것은 작업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와 그리기, 찍기, 만들기라는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즐거운 것에서 시발점이 있다고 본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의 작업은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작업의 영역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양미나 : '사이공간' SPACELESS

20대 초반 우울증을 겪던 나는 침대에서만 생활을 했다. 나에게 하늘은 자취방 천장이었으며 침대는 섬이었다. 스스로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는 자유로웠지만 매일 악몽에 시달려 잠을 자지 못했다. 꿈을 꾸며 보는 상황들은 현실이 아니나 그 속에선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양미나 사이공간7 pen acrylic on canvas 130. <사진=성북문화재단>

어느 날 나는 꿈을 꾸다 바람에 블라인드가 부딪히는 소리에 깬다. 꿈을 꾸며 느끼고 보았던 환영과 소리는 이어지고 침대 맡 포스터의 이미지, 바람과 눈부신 빛이 혼재되며 혼란을 경험했다. 다시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이미지의 잔재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이미지의 충돌은 주체와 객체의 구분 없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머무르게 했고, 꿈속의 나를 마주 보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되는 현실과 환영의 차이는 존재와 실존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했다.
작품 속 부유하는 이미지는 꿈이 그러하듯 예상할 수 없는 이미지와 스토리로 뒤섞이며 무작위적인 진공상태에서 등장한다.

이지선 : 'Dynameis Forest'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지냈던 유년시절의 풍경은 내게 놀이터이자 교감의 장소였다. 당시 보았던 이미지와 자연 안에서의 풍경들은 일상적인 한 부분이었을 테지만,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근간을 이룬다.

▲ 이지선 Dynamis space oil on canvas 112x162cm 2015. <사진=성북문화재단>

이는 나만의 방을 가지고 싶어 했던 유년시절부터 출발한다. 물리적인 공간의 부재로, 상상 속 나만의 방을 만들어 갔고 그렇게 개인적인 공간을 그려가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배치해갔다. 동화책 속 삽화, 종이인형, 만화영화 등을 보면서 그 속의 여러 모티브를 나만의 공간으로 불러와 방을 구성해나가기도 하고, 벽지 무늬, 엽서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며 공간에 이입시켰다. 이렇게 심리적인 공간을 만들어 가면서 상상하던 과정들은 내게 위로이자 만족이었다. 당시 보았던 자연 풍경은 심리적 공간의 주된 배경이 되어 주었다. 기억 속 자연 풍경은 공간을 제공해 주었고, 그곳에 서사적 가능성을 투사하게 되었다. Dynameis forest는 자연이 내게 제공해준 유년의 숲이자, 아직 인식하지 못한 것들을 함축하는 가능성의 숲이다.

 정수연 : 'A Room of One's Own'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본인의 존재에 대해 특징지어 말 할 수 없었다. 그저 사회에서 그리는 20대의 모습, 그것뿐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들과 주변의 시선에 묶여, 스스로의 이상향이 아닌 것을 의심 없이 좇아 살아왔던 모습에서 신념과 확신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나약함과 불안함을 발견했다.

▲ 정수연 A Room of One's Own-2 acrylic pencil on paper 75x67cm 2014. <사진=성북문화재단>
개개인은 타자와 대치할 수 없는 독자적인 실존의 존재이다. 사회가 재단한 평균과 기준, 타자의 이상향에 깊게 흡수되어 주체성을 잃은 채 살아가는 본인을 비롯한 현대인의 모습은, 외부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고유의 본성을 기형적인 형상으로 변태한 기형식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형식물은 주체성을 상실한, 흔들리고 있는 나약하고 불안한 존재의 자화상이자 현대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기형식물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지금의 변태는 완성태가 아니며,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본성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디나미스 이다. 기형식물이 존재하는 정원은 본인을 옭아매던 것에서 한걸음 물러나 주체성을 찾아가려는 장소로 불안과 평온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최윤정 : 'Ariadne's Load'

완성되어 가는 줄 알았던 삶은 변화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가 깨어 있는 만큼 다가오며, 내가 향하는 대로 흐른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과거란 끊임없이 변해가는 현재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는 무엇! 현재에 녹아있는 과거의 흔적들은 늘 새롭게 해석되면서 현재로 재탄생 된다. 과거의 사건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에만 얽매여 있지 않다.

▲ 최윤정 Ariadne's Load 2 acrylic on canvas 162x130. <사진=성북문화재단>
나의 의식과 탐험의 변화를 통해 현재의 내 상태와 새로운 생성의 계기를 제공해 준 모든 것들에 대해 경건함을 느낀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나의 삶과 닮아 있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달의 기운 같은 것. 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묵묵히 길을 가는 것. 나는 내 자신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서 내면의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을 직관적으로 탐구한다. 삶은 불안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길 위에 진리가 있고,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이 있다. 그렇게 길 끝에서 만난 내 자취는 아리아드네가 건넨 생명의 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