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한 달도, 두 달도 아니고 무려 35년 동안 이어졌다. 세대가 교체되는 세월이다.

이미 많은 이들은 익숙해져 버렸다. 조선이 일본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희미해진 지 오래되었다. 대신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라도 개인의 삶을 꿈꾸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조용히 해나갈 뿐이었다.

그중 어떤 이들은 적극적이었다. 기회를 틈타 좀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애썼다. 명예와 권력도 갖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일본인이 되기를 선택했다. 일본식 이름을 쓰고 일본 옷을 입고 일본 말을 했다.

조선인이지만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자신을 바꿔나갔다. 지식인 친일파들은 "조선이 민족적으로 부족하고 결함이 있기 때문에 식민지가 된 것”이라며 민족 해방운동이나 독립운동의 무용성을 펼치기도 했다.

거기서 끝났다면 이 민족은 지금도 일본식 이름을 쓰고 일본 말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은 일제에 해방된 민족을 끊임없이 꿈꿨다. 처자식과 부모를 잃고 함께 독립운동하던 동료를 잃을지언정, 주권을 되찾은 자유 조선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다.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암살’은 그런 평범한 독립운동가들을 이야기한다.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독립군, 임시정부대원들과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 스파이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조국도, 이름도, 용서도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 영화 '암살'의 한 장면. 암살 작전의 대장을 맡은 안옥윤(가운데)과 속사포(좌), 황덕삼(우)이 태극기를 배경으로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구 선생은 조연이다. 대신 사진 속 낯선 얼굴, 아니 사진으로도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주인공 안옥윤(전지현)이 그렇고 그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속사포(조진웅), 황덕삼(최덕문)이 그렇다.

최동훈 감독은 “유명한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평범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며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여성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통해 시나리오를 풀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일항쟁기(1919년~1944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 6,259장을 분석한 결과, 독립운동의 주역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박경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은 "15세부터 72세 노인까지 남녀노소 모두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투옥되었다”고 했다.

영화 ‘암살’에서 청부살인업자로 나오는 상하이피스톨(하정우)은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건 안옥윤에게 이렇게 묻는다. “매국노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 이에 대한 안옥윤의 답변은 명쾌하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해방 조국을 꿈꾸는 수많은 ‘안옥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어 살아가고 있다. 포기하지 않았던 평범한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지금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상황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의 희망과 꿈을 앗아가려 하는가. 누가 대신해주리라는 허황된 기대는 버리자. 대신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