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영도구 봉래산 전경(사진=영도구청)

앞서 마고당과 천제단을 통해 부산의 뿌리를 2회에 걸쳐서 소개했다. 마고부터 환인, 환웅, 단군까지 고대사의 문화유산이 현대의 지역문화로 계승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부산 스토리텔링이다.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었다. 부산 곳곳에 ‘선도문화(仙道文化)’의 꽃이 만발했다. 선도가 무엇인가? 신선의 도를 말한다. 유교, 불교, 도교 등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에 있었던 우리나라 고유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단학과 국학기공 등 심신수련법의 시원으로 알려져 있다. 

서복스토리…영도구 봉래산과 남구 서불과차 
 
부산의 원형인 동래(東萊)부터 신선과 관련이 깊다. 동쪽의 내산이라는 뜻이다. 내산은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 중의 하나인 봉래산(蓬萊山)의 약칭이다. 삼신산이란 봉래산·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을 말한다.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복과 함께 동남동녀를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의 산이라고 하지만, 홍만종은 『해동이적』에서 삼신산이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 동방의 산수는 천하에 제일이라, 세상에 일컫는 삼신산이 모두 우리나라 안에 있다. 그러므로 종종 세상을 벗어나 은둔하는 선비들의 신기한 자취를 듣고 볼 수가 있으니 지령(地靈)은 인걸(人傑)이란 말이 과연 허튼 말이 아니다.”
 
삼신산 중의 하나인 봉래산이 부산 영도구에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산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마을 이름도 신선 시리즈다. 영선동(瀛仙洞), 신선동(新仙洞), 청학동(靑鶴洞), 봉래동(蓬萊洞) 등이 그것이다. 
 
▲ 부산 영도구 봉래산 불로초공원(사진=영도구청)
 
영도구는 지난해 7월 봉래산 KBS송신소 주변의 미활용 토지(3244㎡)에 '불로초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황칠나무, 도라지 같은 각종 약용식물을 심었다. 시민이 쉴 수 있도록 전망대, 목재 스탠드, 다목적 광장, 놀이터 등도 갖췄다.
 
구 관계자는 “공원을 조성한 것은 중국 진시황 전설과 관련 있다. 서복이 찾은 전설의 삼신산이 부산 백양산(방장산), 천마산(영주산), 봉래산이라는 스토리텔링을 관광 자원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로(李仁老·1152∼1220)는 『파한집(破閑集)』에서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신선의 나라라 불러왔다"라고 말했다. 영도구는 신선의 자치구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제 남구로 가보자. 용당동에 신선대(神仙臺)가 있다. 옛날부터 창망한 대해를 굽어보는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면 신선이 부는 피리 소리가 들렸다고 전한다. 또 문현동에는 광선대(廣仙臺)라는 신선이 사는 곳이 있다. 주민들은 서불과차(徐市過此)란 석각이 존재했다고 한다. 서복이 인적이 있는 이곳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서복은 발해만을 떠나 제주도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서복에 관한 이야기는 전남 진도 군내면의 서시터, 고흥 서시밋, 남해 서시과차 등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이는 서복 설화가 우리나라 선도문화와 함께 전승한 것으로 생각된다.
 
천부경을 전수한 최치원의 석각
 
▲ 부산 해운대 동백섬 내 최치원 동상(사진=윤한주 기자)
 
해운대(海雲臺)는 한국선도의 비조인 최치원이 남긴 석각에서 유래됐다. 최치원(崔致遠, 857∼?)은 선도의 역사서인 선사(仙史)를 언급한 인물이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어 풍류라고 한다. 가르침을 베푼 근원이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난랑비서문〉, 《삼국사기》"
 
최치원은 동백섬 일대를 거닐다가, 이곳의 절경에 심취해 동백섬 남쪽 암벽에 자신의 자인 해운(海雲)을 따서 "해운대(海雲臺)"라는 세 글자를 새겼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문신 정포(鄭誧, 1309∼1345)는 ‘대는 황폐하여 흔적이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는 시를 남겼다. 당시에도 이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비바람과 파도에 씻겨 나가 ‘운(雲)’자가 심하게 닳아있는 상태이다.
 
▲ 부산 동백섬 최치원 해운대 석각(사진=윤한주 기자)
 
민영현 부산대 철학과 교수는 “최치원의 생애는 당나라 유학기, 귀국 후 활동기, 은둔 유랑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라며 “은둔유랑의 시기에 부산의 해운대를 거쳐 갔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략 그의 나이 44세 전후에 이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곳에 유적비는 1965년, 동상은 1971년, 해운정은 1984년에 각각 세워졌다. 경주최씨 부산종친회에서 동백섬 해운정에 사무실을 두고 유적관리를 맡고 있다. 
 
또한 최치원은 한국선도의 철학이 담긴 '천부경(天符經)'을 묘향산 석벽을 통해 후대에 전한 인물이다. 
 
부산 명예시민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천부경을 처음 전수한 최치원의 발자취가 부산 해운대에 남아있다”라며 “(해운대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신문화의 맥을 가진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산이 가까운 미래에 세계적인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초고층 빌딩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치원 선생이 전한 천지인 사상을 정신문화로 발전시킨다면 부산은 한층 더 격조 있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부산 해운대 동백섬 전경(사진=해운대구청)
 
이밖에 낙동강 하구에는 신선이 내려와 노닌 강선대(降仙臺)가 있다. 또 강서구 칠점산(七點山)에는 참시선인(旵始仙人)이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부산은 단군조선 이후 한국선도의 맥이 흐르고 있다.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잘 엮는다면 선도문화의 메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74편 부산 장산 마고당 기사(바로가기 클릭)
 75편 부산 장산 천제단 기사(바로가기 클릭)
 
■ 참고문헌
 
박창희외, 《스토리 부산을 만나다》, 해성 2014년
민영현, 〈풍류도와 고운 최치원의 동인의식〉, 《선도문화 10집》, 국학연구원 2011년
국제신문, 《천지인 사상 정신문화로 승화 땐 부산 더 격조있는 도시 될 것》, 2012년 4월 8일
 
■ 찾아가는 방법
 
1. 봉래산 불로초공원
부산역에서 9-1버스를 타고 쌍용자동차학원에서 내린다. 걸어서 20분이다. (바로가기 클릭)
 
2. 동백섬
부산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 서면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뒤 동백역에서 내린다. (바로가기 클릭)
 
■ 천부경은 무엇인가 
 
"‘천부경’은 천제(天帝)의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글이다. 환웅 대성존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사슴발자국모양문자)으로 기록하였는데,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의 전서(篆書)로 쓴 옛 비석을 보고, 다시 문서를 만들어 세상에 전한 것이다." 
 
천부경과 관련한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이다. 천부경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환단고기’를 편집한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탁본해 1917년 단군교당으로 보낸 뒤부터다. 1920년 도교사상가이자 정신철학자인 전병훈(1857∼1927)이 저서 ‘정신철학통편’에 천부경해제를 실은 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부경 해제다. 
 
그 후 1921년 계명구락부에서 발행한 잡지 ‘계명’4호에 한별(생몰연대 미상)이 천부경을 해제했고, 1922년 유학자 김택영(1850~1927), 1923년 석곡 이준규(1899~1923), 1930년 단암 이용태(1890~1966) 등의 천부경 해제가 잇따라 나왔으며,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가 이시영, 홍범도, 여운형 등도 천부경을 소개하거나 천부경을 찬양하는 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