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장산국, 스토리텔링으로 되살려

천제단의 천지인은 환인, 환웅, 단군으로 봐야

▲ 부산 장산 대천체육공원에서 오르면 마고당과 천제단 이정표가 나온다(사진=윤한주 기자)
 
천제단이라고 하면 강원도 태백산이나 강화도 마니산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항구도시 부산에서 천제단이라니? 이는 근현대사의 이미지가 강한 부산이 알고 보면 뿌리가 깊은 역사의 고장임을 알려준다. 
 
신라 이전의 나라 이야기
 
먼저 천제단이 있는 장산의 역사를 만나보자. 이곳은 2만 년 전 사람이 살았던 구석기 유적이 있다. 안내판을 살펴보니 “부산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이 바로 장산 기슭인 좌동 중1동 청사포(중2동) 등지에 산 구석기 사람들”이라며 “뗀석기의 재료인 양질의 석재가 풍부한 장산, 먹을거리가 풍부한 바다 등 물을 구하기 유리한 야외생활 유적으로 추정한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나라가 생겼으니, 장산국이다. 
 
<삼국유사>에는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동래현, 내산국이라고도 함)에서 온천 목욕을 했다”라고 기록했다. 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는 “장산국이 나라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라며 “신라 이전에도 장산과 동래 일대에 초기 형태의 국가 또는 부족국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부산 장산 천제단을 가려면 마고당에서 나와 돌탑과 바윗돌인 너덜겅을 지나야 한다(사진=윤한주 기자)
 
반면 <삼국사기>에는 장산이 아니라 거칠산국이라고 적었다. 
 
“신라 탈해왕 때 거칠산국을 치고 신라의 영토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거칠산국의 다른 이름이 장산국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또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산의 옛 이름인 동래와도 관련이 깊다는 점이 주목된다.
 
“옛 장산국 혹은 내산국이라고도 한다. 신라가 이 땅을 취하여 거칠산국이라 했고, 경덕왕(신라 35대, 재위 742∼765) 때 지금의 동래현으로 고쳤다.”
 
따라서 장산국은 부산 일대를 다스렸던 옛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통치자가 있었을 것이고 하늘에 제사도 지냈을 것이다. 이는 단군조선 이래 부여, 고구려, 신라 등 우리나라의 제천문화가 국가별로 계승됐기 때문이다. 
 
▲ 너덜겅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야 장산 천제단이다(사진=윤한주 기자)
 
천제단의 삼신(三神)은?
 
앞 편에서 소개한 마고당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천제단이 자리하고 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마고당을 나오고 큰 돌탑과 너덜겅을 지나면 이정표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갈림길에서는 안내판이 없어서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헷갈렸다. 멍석처럼 길을 만든 오른쪽으로 가야 천제단을 만날 수가 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바윗돌이 많아서 어린이나 노인들이 다니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안전줄을 설치하고 이정표도 곳곳에 세우면 좋을 것 같다. 
 
제단은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신선바위 뒤에 바위 제단을 한 단 더 높게 쌓은 형태로 되어 있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처럼 제단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앞면 50㎝, 옆면 75㎝, 두께 8㎝ 규모의 직사각형 형태인 화강암 반석이다. 주목되는 것은 3개의 입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가운데 입석이 높이 90㎝로 가장 크다. 왼쪽과 오른쪽의 입석은 높이가 각각 61㎝, 48㎝이다. 이들 입석은 천신․지신․산신(山神) 혹은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한다고 한다.  
 
▲ 부산 장산 천제단 전경(사진=윤한주 기자)
 
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은 “세 입석은 민족 삼신, 즉 한인(桓因-天), 한웅(桓雄-地), 한검(桓儉-人)을 모신 제단”이라며 “천제단이 모셔진 이 일대를 하늘에 제사 지내던 신성한 지역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민족의 천지인 사상은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에서 비롯됐으니 이를 삼신사상으로 연결시킨 것으로 보인다.
 
제의는 마고당과 함께 1월과 6월에 지낸다.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동일하다. 다만 제물이 다르다. 천제단은 생쇠머리, 조리하지 않은 생선, 떡, 삼색과일, 제반, 술 등을 올린다. 마고당은 육류와 어류를 일절 올리지 않고 떡, 메, 나물, 과일, 제반, 정화수를 진설한다. 또 천제단에는 3배를 올리고 마고당에는 9배를 올린다. 제의를 마치면 마을 경로당에서 남은 음식으로 주민과 함께 음복한다.
 
물론 현재의 제단을 옛 장산국의 제단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단군조선의 고인돌이나 선돌 등 거석문화와 비교할 때, 크기에서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니, 당연히 제천문화 또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고 전국에 신사를 세운 것과 같다. 따라서 장산국 멸망 이후 가뭄이 심할 때 산신에게 기우제를 지내는 지역의 민간신앙 유물로 봐야할 것이다. 실제로 동하면의 고문서 등에는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후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장산국이 최근에 스토리텔링 차원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점은 관심을 끈다. 2012년 부산문인협회는 창작시극 '장산국'을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해운대구는 2013년 9월 전국 최초로 ‘해운대 장산국 이야기’를 창작 오페라를 제작해 초기 3차례 공연의 전석이 매진되는 성공을 거뒀다. 장산국의 마지막 여왕 고아진과 최윤후 장군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이처럼 장산국의 역사와 문화는 지역민의 노력으로 계승되고 있으니, 또 다른 희망이 되고 있다.
 
 74편 부산 장산 마고당 기사(바로가기 클릭)
 
■ 참고문헌
 
김승찬 외, <부산의 당제>,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김병섭, <장산의 역사와 전설>, 도서출판국제 2008 
복기대, <역사 유적을 활용한 지역발전 방향에 관하여>, 《제4회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학술대회-해운대장산의 한민족문화의 원류 탐구》, 국학원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공동 주최, 2011년 9월 3일 
주경업, <해운대 장산 천제단>, 부산일보 2015년 4월 22일
 
■ 찾아가는 방법
 
부산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 서면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뒤 종점인 장산역에 내린다. 역에서 대천공원까지는 1.5km로 걸으면 20분이다. 장산역에 내려 시내버스로 환승해도 된다. 시내버스는 5, 36, 38, 40, 100-1, 181번 일반버스와 1001번 급행버스가 대천공원 인근의 대림1차아파트 앞에 하차한다. 양운고 방향으로 가 우회전해 약 300m 가면 바로 대천공원이다. 이곳에서 천제단까지 40분이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