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는 금방 망할 것 같다. 정치지도자들은 부정부패로 썩어가고 노동생산성은 점점 떨어진다. 부정부패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사실 성실히 일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언론에는 그런 사람들의 얘기가 나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부정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해석한 것은 아닐까.”

허성도 교수는 지난 14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제144회 국학원 국민강좌 ‘우리 역사 다시 보기’에서 이같이 밝혔다. 허성도 교수는 중어중문학과 명예 교수로 ‘우리 역사 다시보기’ ‘자랑스러운 한국사’ 등 우리 역사를 바로 알리는 강연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허성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명예 교수

이날 허성도 교수는 역사의 객관적 진실에 대해 말했다. 그는 “역사는 과학이 아닌 해석”이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버리고 보다 객관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자”고 주장했다.

일례로 그는 조선이 멸망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이 멸망한 이유 중의 하나로 사색당파 싸움을 말한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존재하는 한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파벌싸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 선조들만 당파싸움을 했었다고 자학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삼국, 고려, 조선의 존속 기간은 500년 이상의 대단히 긴 역사다. 이는 중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당히 오랜 기간이다. 우리나라의 왕조가 이처럼 오랜 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선조들이 무조건 권력층에 굴종하는 사람이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은 국민이 국가의 주체라는 의식이 있다. 그래서 국난이 일어나면 백성이 의병이 되어 싸웠다. 우리는 스스로 침략만 당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오히려 숱한 침략에도 나라를 지켜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국민들을 오랜 기간 통치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조선 시대 백성들의 경제 수준과 농지세 개혁

또한, 조선 시대 백성들의 경제 수준은 어떠했을까. 2003년도 해외 연구 보고서에는 1700년대 조선인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604달러로 중국, 영국의 1인당 GDP 600달러와 비슷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강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 소득 수준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특히 세종대왕의 농업혁명은 조선 농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높였다. 세종대왕은 농업생산량 증대를 위해 전국의 부농들을 찾아 농사 비법을 수집하고, 이를 집대성한 <농사직설>을 발간했다. <농사직설>에 실린 비법 중 하나가 ‘밭고랑’이다. 밭고랑을 만들면 홍수가 나도 피해가 적고 가뭄에는 습기를 머금어서 땅이 메마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밭고랑 농법은 유럽보다 몇백 년 이상 앞섰다.
 

▲ 제144회 국민강좌에서 허성도 교수가 강의를 펼치고 있다. 

세종대왕은 농지세를 개혁하는 과정에서도 농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고 배려했다. 당시 농지세는 총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내야 했는데, 불합리한 제도로 농민들의 상소가 잇따랐다.

세종대왕은 수확 상태에 따라 풍년에서 흉년까지 9등급으로 나누고 토질 상태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을 매기는 농지세 수정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이것은 양반, 상놈 구분 없이 누구나 1인 1투표권을 갖는 혁신적 국민투표였다. 투표 결과 찬성이 좀 더 앞섰지만 반대표도 적지 않았다. 관료들도 이대로 시행했다간 오히려 농민들과 부딪힐 수 있다고 반대했다. 세종대왕은 이를 받아들이고 일부 지역에 한해 시험적으로 시행해보고 4년 후 충청, 호남, 영남 삼도(三道)에 확대 시행했다.

농지세 수정안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16년 만에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렇게 제도 하나를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조정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신중한 노력을 기울였다.

허 교수는 “우리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현재의 대한민국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볼 수 있다. 나의 삶을 비추어 볼 때도 안 좋은 면만 볼 게 아니라 좋은 면을 생각해보자. 이렇게 건강한 것만 해도 감사하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학원이 주최하고 서울국학원이 주관하는 국민강좌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저녁 7시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정기적으로 열린다. 다음 달 11일 열리는 국민강좌는 전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이을형 교수를 초청해 ‘한국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주제로 강연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