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아리랑대축제에 앞서 천진궁에서 불씨봉헌고유제를 올리고 있다(사진=밀양시청)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전 세계를 돌면서 열리는 올림픽 기념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성화(聖火)다. 대회 기간 활활 타오르는 불빛은 자국을 대표해서 뛰는 선수들의 열정처럼 빛난다. 우리나라도 올림픽이 열리면 단군의 아들이 쌓았다고 전하는 강화도 참성단에서 성화한다.

밀양은 어떠할까? 매년 5월에 열리는 ‘밀양아리랑대축제’의 성화는 전야제 행사로서 시작된다. 표충서원, 예림서원, 아랑각에서 각각 불씨를 채화해 천진궁에 봉헌한다. 이곳은 단군왕검부터 역대시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다음날 이 불씨를 성화하고 시가 봉송행렬을 거쳐 성화대에 점화하면 행사가 열린다.
 
독립군의 고장
 
밀양아리랑대축제는 1952년 11월에 ‘밀양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이후 1967년 예총지부와 문화원에서 아랑제와 문화제의 통합 문제를 제기했다. 여론을 수집해 1968년 ‘밀양아랑제’로 개칭됐다. 이유는 문화제란 이름이 향토적인 정서가 담겨있지 않다는 점, 제의(祭儀)가 수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의 축제를 보면 ‘강릉 단오제’, ‘남원 춘향제’, ‘경주 신라제’ 등과 비교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러다가 밀양아랑제의 이름에 특정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반대 여론이 생겼다. 2000년부터 밀양문화제로 복귀됐다가 2004년 밀양아리랑대축제로 바뀌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이름을 정하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에 대해 알아보자. 한민족을 대표하는 노래, 아리랑이 언제부터 불러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연구에 따르면 아리랑의 어원설은 24여 설이 되고 아리랑의 종류는 186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에서 밀양아리랑은 국내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서 널리 애창됐기 때문이다.
 
▲ 밀양아리랑대축제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사진=밀양시청)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좀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라기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임 오셨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특히 대일항쟁기 ‘광복군 아리랑’으로 불렸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리네 부모가 날 찾으시거든/
광복군 갔다고 말해주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리라요/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보세/
광풍이 불어요 광풍이 불어요/
삼천만 가슴에 광풍이 불어요.”
 
이는 밀양이 약산 김원봉, 단애 윤세복 등 많은 항일독립운동가를 탄생시킨 독립군의 고장이라는 점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정신은 밀양시립박물관과 독립운동기념관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승되고 있다. 
 
선도문화로 하나 되다!
 
축제의 3대 정신은 충의(忠義) 지덕(智德) 정순(貞純)이다. 충의정신은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것으로 불교문화를 나타낸다. 지덕정신은 한국유교의 거봉인 김종직(金宗直)의 유교문화를 상징한다. 정절정신은 아랑 윤동옥(尹東玉)의 자태를 지닌 것으로 유교문화를 나타낸다. 이곳에서 채화한 불씨는 단군을 모신 천진궁에서 하나 된다. 
 
윤병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 석사는 “단군 앞에서 올리는 봉헌의 불씨는 한국선도의 본래 모습”이라며 “한국의 여러 다양한 문화현상의 갈래들이 실상 선도문화(仙道文化)라는 중심 속에 하나로 용해되어 들어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회장은 천진궁에서 고유제를 올린다.
 
“단군기원 0000년 0월 0일은 제0회 밀양아리랑대축제를 맞이해 대회장 000는 국조 단군의 성전에 감히 밝히옵니다. 국조의 개국성지이신 한배검께서 펴신 홍익인간의 이념을 이어받아 이 겨레가 간직한 고유문화의 창달을 꾀하고 나아가 국민총화로 선진조국 창조의 우렁찬 전진에 발맞추어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달코자 제00회 밀양아리랑대축제를 개최하게 되었사오니 굽어 살피시어 온 누리에 밝은 빛을 내려주옵기를 삼가 고하나이다.”
 
▲ 밀양아리랑대축제 기념행사(사진=밀양시청)
 
우리나라의 축제는 단군조선 이래 부여의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 등으로 계승됐다. 이후 오늘날 ‘개천절’이 된 것은 1909년 나철(羅喆)이 단군정신으로 조국을 구하고자 세운 대종교(大倧敎)에서 비롯됐다. 이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년 국경일로 기념했다. 광복한 이듬해인 1946년 10월 3일의 개천절은 오전 6시 대종교 천진전(天眞殿)에서 마라톤 선수 함기용에게 성화를 전하는 성화전수식이 거행됐다. 이 성화는 안재홍(安在鴻, 당시 민정장관)에게 건네져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됐다. 따라서 나철의 제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윤세복 선생의 주도로 건립한 밀양 천진궁에서 성화를 거행하고 있는 것은 뿌리를 제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71편 - 밀양 천진궁의 역사를 찾아서(바로가기 클릭) 
 
■ 참고문헌
이덕일, ‘개천절의 뿌리’, 한국일보 2014년 10월 2일
손정태, ‘밀양의 항일독립운동가’,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2014년
윤병유, ‘밀양 영남루를 통해 본 한국의 선도문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년
대종교총본사, 대종교요감, 198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