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본래 고유한 문화가 있었는가. 새로 무엇인가 나왔다 하면 모조리 위서(僞書)로 보는 풍토가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그런 풍토에서는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요즘 문학계에 표절 시비가 붙어서 한편 불쾌하기도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한 젊은 작가가 몰매를 맞는 것을 보니 시원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위서니 표절이니 하는 문제는 많은 독자를 속이는 일이라 집필자 한 사람 그리고 케케묵은 고문서 한 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발전 전반에 관계되는 것이어서 그대로 둘 수 없는 큰 문제다. 철저히 따져야 한다. 우리에게 고유문화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심하게 논쟁한 일은 없었으나 1945년 일제강점에서 해방되면서 이제는 우리 문화를 갖자고 했으나 그런 것이 없고 위서라고 하여 폐기한 채 70년이 지났다. 우리에게 유불선(儒彿仙) 외래문화 말고 우리 문화가 있었는가?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2000년 전 최치원이 한  ‘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다(國有玄妙之道)’란 말은 무엇인가.

1945년 해방된 공간에 자유가 찾아 왔으나 우리 것 우리 문화가 없으니 모두가 좌우익 외래문화에만 매달려 싸웠다. 그 때문에 우리 정신 우리 문화가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찾아보아야 하는 데 찾는 사람이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남이 주는 구호물품 구호문화뿐이었다. 문화는 고급⦁하급이 있으니 하급이야 어떻든 고급문화의 향배가 중요하다. 지금까지도 우리 문화는 고급이고 하급이고 가리지 않고 외래문화의 홍수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 것이 없다면 그 소중한 자유는 불필요한 물건이 되지 않는가. 그러니 먹는 문제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바로 우리에게 우리 것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였다. 지금 어떤 뜨내기 작가가 일본 작품은 표절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문화가 있다면 중심이 있었으니 우리 문화가 흔들리지 않겠지만 중심이 없다면 좌우로 흔들리다가 결국은 자빠질 것이다. 우리 것이 있다면 한두 사람이 표절해도 상관이 없다. 우리는 제대로 된 번역시대가 없었다. 남의 글을 아무렇게나 번역해서 내다 파니 읽는 독자는 번역이 잘 되었는지 모르고 읽었다. 그러니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 것도 없는 주제에 남의 것을 베끼다가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니 대학이 어디 대학다운 대학이 있었는가. 미국에 가서 남의 운동복이나 세탁하다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고국에 돌아온 그런 사람이 강단에서 제대로 교수를 했겠는가. 문화의 중심이 문⦁사⦁철인데 유학으로 말하면 시경⦁서경⦁역경인데 그 삼경이라는 것이 부실하니 인문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인문과학이라고 하니 정말 문⦁사⦁철이 과학인 줄로 알고 울타리 안 전공분야만 공부하였다. 이제와서 문⦁사⦁철이 하나라고 하니 우리의 지식에 큰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알고 당황하고 있다.

얼마 전에 한 여자가 가짜 학위를 가지고 전문가 시늉을 하다가 들통이 난 일이 있었다. 신경숙 씨도 남의 소설을 번역하다가 자기 소설을 써서 지가를 올렸다고 하는데 번역을 하다 보면 표절의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8.15에 6.25가 겹치는 해방 전후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믿음이었다. 정의였다. 우리는 정의는 물론 수치를 배우지 못하고 살았다. 신용 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너는 누구냐고 물으니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답은 아주 쉬웠는데 우리에게 (1) 우리 것이 없다. 아니면 (2) 있다. 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있다는 답 속에는 두 가지 다른 답이 있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우리 고유의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남의 것이라도 일단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우리 문화가 된다는 답이다. 

그러나 이 답은 모호하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다. 가장 모호한 것이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은 다 우리 것이야 하는 답이다. 일본이 그런 식으로 대답하여 비웃음을 당하였다. 요번 표절시비로 혼이 나고 있는 작가 신경숙도 매우 알쏭달쏭한 답변을 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고유성이란 거창한 문제를 이런 하찮은 표절시비에다 갖다 대고 묻는다는 것은 잘못일지 모르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아주 작게 보이는 이 표절시비가 오늘의 한국문학을 비롯한 학문과 예술이 당면한 큰 문제라고 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문에 보도된 대로 작가 신 씨의 마음속에 들어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작가의 양심 하나로 해결되는 것인데 워낙 상습을 하다 보니 표절인지 아닌지를 본인이 모르는 것이다. 서울에서 점포의 이름을 보면 외국인까지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영어도 아니요 이탈리아어도 아닌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는다. 아무도 모르는 괴상한 이름을 붙여 놓고 손님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또 괴상한 일은 신 씨가 이 문제로 검찰에 불려간다는 것이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는 우리 문학인의 문제이니 우리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문에 보니 문학연대 한국작가회의가 긴급 토론회를 열어 표절 문제를 토의한다고 한다.

신경숙 씨가 표절한 것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하는데 필자가 만일 검사라면 죄질이 나쁘다고 무거운 형벌을 가할 것이다. 첫째  신 씨가 표절한 작품 가운데 일본의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1925-1970)의 단편소설 「우국」이 들어있다. 미시마는 일장기로 머리를 쌓아 매고 높은 단상에서 대중을 내려다보고 할복자살한 유명한 소설가다. 일본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川端)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 소설가는 걸핏하면 자살한다. 그러나 미시마는 노벨상을 받지도 않았고 일본이 패전하자 자기 책임으로 진 것이라 착각하고 홀로 칼을 들고 높은 단상에 올라 대중에게 무사정신(武士精神)이 무엇인지 본때를 보여 준 사람이다. 신경숙 씨는 하필이면 그런 사람의 소설을 읽고 표절했을까. 일본인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작가 미시마의 작품을 표절하였으니 얼마 못가서 들키고 말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상한 것은 미시마가 아니라 신경숙이다.

그런데도 대담하게 표절했으니 신경숙 씨는 통이 큰 여자라 할 수 있다. 북한에 가면 아마 통이 크다고 환영을 받을지 모른다.  신 씨가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등  말을 바꾸었다. 작가가 일본어를 잘 모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사람을 시켜 표절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미시마가 다시 살아나서 일본 혼(야마토 다마시=大和精神)이 꿈틀거리지 않는 한 표절의 현장을 알 길이 없다. 어찌 되었건 신 씨는 통 큰 여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지금 막 일본에서 뜨고 있다. 미시마가 목숨을 걸고 군국주의를 찬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미시마다. 그런 미시마의 작품을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가 표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매우 기뻐할 사람이 바로 아베 신조이다. 만일 신 씨가 일본인이었다면 절대 미시마의 작품에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신 씨는 일본에서 유명한 표절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작가의 양심 문제다. 그리고 우리 문학계의 품위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표절의 심성을 학교 교실에서 배우고 있다. 왜냐하면 커닝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외 공부라고 하기 때문이다. 요번의 표절사건으로 교육부 장관은 학교 교실에서의 커닝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할 것이다. 학교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아 한다. 메르스만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신문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커닝을 가장 잘 한다는 기사가 나서 놀랐다. 서울대학교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제일의 초일류 대학이 아닌가. 필자의 모교이기도 한 그런 대학에서 커닝이 전자 기계화되어 학생들이 손바닥에다 글을 쓰던 그런 재래식 방식을 버리고 선진화되었다고 하니 수작업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신 씨의 표절사건이 학교 교육, 특이 대학생들의 부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이 그렇다면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기야 인터넷 시대가 되어 손가락만 까딱하면 다 끝나는 시대가 되었으니 모든 교육이 커닝으로 통하게 된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야 살 수 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정하지 않는 엘리트가 필요하다. 무엇을 가지고 창조할 것인가. 묵은 것으로 새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남의 것을 모방하고 표절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모방과 표절을 가지고 통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창조하여야 한다. 그래야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남의 물건을 만들어 남의 장사를 하는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 우리는 옛날 지주 밑에서 농민을 착취하는 마름 노릇을 했다. 마름은 중간 착취자다. 지주에게 착취당하면서 소작농을 착취하였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중소기업을 하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위해서 봉사하고 고객에게 봉사하며 물건을 팔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이란 윗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절대 속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표절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인물(人物)이라 하면 사람(人) 따로 물건(物) 따로의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과 물건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발전의 시대는 갔다. 이제부터는 인간의 시대다. 이렇게 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제는 인간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믿음이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대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이 중요하다. 이기건 지건 인간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전통적인 선비정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었다. 우리 것을 잊은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서 물건을 빼고 정신을 알아야 한다. 19세기 말 우리의 정신은 위정척사(衛正斥邪)였다. 바른 것을 존중하고 나쁜 것을 배척하라는 정신이 소중한 우리 문화요, 정신이었다. 그것을 선진국인 중국에서 따온 것이요 표절한 문화로 잘못 알았다. 지금 중국 어디에 가도 그런 말은 없다. 우리 문화가 있고 다음에 남의 문화를 섞었다는 문화와 순수한 우리 것을 구별하고 찾아내야 한다.

학술논문에서 남의 글을 빌려 쓸 때는 반드시 각주를 붙여 아무개 책 몇 쪽에서 인용했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각주를 달지 않고 남의 글을 도용하는 시대가 왔다. 심지어 제자가 스승의 글을 차용(借用)하면서도 자기 글인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이 시치미가 집단화되어 신경숙 씨 같은 표절이 나와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을 <침묵의 카르텔>이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숫자화 되어 선악이 없어진 사회, 이래서 되는 것인가. 묻고 싶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