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입구 바로 옆에는 광개토대왕 동상이 있다. [제공=국학원]

[10]편("클릭" 국학원은 꽃 한 송이, 소나무 한 그루에도 이유가 있다)에 이어...

이야기 하나. 광개토대왕은 누구인가?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입구에 서면 위풍도 당당하게 말을 타고 창을 비껴든 금빛 찬란한 장수 한 분이 입구를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 역대 왕 중에서 모두가 가장 존경하는 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374~412년)입니다.

고구려 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난 광개토대왕의 본명은 ‘담덕(談德)’입니다. 소수림왕 4년에 태어났습니다. 큰 아버지인 소수림왕은 자타가 공인하듯 초기 고구려를 반석에 올려놓은 왕입니다. 소수림왕이 아들 없이 죽자 동생인 고국양왕이 왕위에 올랐고, 담덕은 12세에 태자가 되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나면서부터 허우대가 컸으며 뛰어나고 활달한 뜻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주몽(동명성왕 東明聖王)께서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세우면서 주창한 나라의 건국이념은 ‘다물(따물 多勿)’입니다. ‘다물’은 ‘근원으로 돌아가서 모두 회복 한다’는 뜻으로 ‘다물려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학자들은 힘을 뜻하는 고구려의 ‘다물’이라는 말이 몽골과 투르크(터키)계로 영향을 끼쳐 '타모르'(tamor), '타미르'(tamir)로 변하고 쿠빌라이의 손자 '테무르'로 변했다고 합니다. 만주어 ’다무(damu)’는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뜻이고, '다마리(damari)’는 ‘원상태, 근본 등으로 돌아간다’를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천손(天孫)의식을 가진 고구려는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라고 여겼습니다. 19세에 왕위에 오른 광개토대왕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 사상’과 개국 선조인 주몽의 ‘다물 정신’으로 모든 부족과 백성들을 하나로 묶어 대통합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최대의 강력한 신무기인 맥궁과 개마무사를 동원하여 곧바로 백제와 신라, 왜를 신하로 삼고, 중국의 후연을 멸망시키는 등 대륙의 국가들까지도 뒤흔들어 세계역사가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영토를 넓히고 넓혀서 단군조선의 드넓었던 땅을 ‘다물’려 받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고구려는 단군의 아들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인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이 모두 생업에 힘쓰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해졌으며, 온갖 곡식이 가득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나 보다.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셨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니 묘호(廟號)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입니다. ‘태왕太王’은 그냥 왕이 아니라 ‘왕 중의 왕(King of kings)’이라는 뜻입니다. 황제를 상징하는 재위 시의 연호는 ‘영락대왕(永樂大王)’으로 우리 역사에서 사용된 최초의 연호입니다. 그 뒤로는 1500여 년이 지난 1897년에야 대한제국을 선포하신 고종황제가 잠시 황제라고 칭하였을 뿐입니다.

고구려는 실재했던 우리 한민족의 황제국(皇帝國)이지만 중국은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왜곡합니다. 나아가 발해사, 단군조선역사도 자신들의 역사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만일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면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한 고려도 중국 역사가 되고 우리의 역사는 기껏해야 한강 이남에 국한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광개토호태왕, 을지문덕 장군, 연개소문, 양만춘 장군, 강감찬 장군 등등은 모두 중국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설립된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바로 문 앞에서 지켜주시는 분이 역사상 우리의 철학과 영토를 가장 넓히신 ‘광개토호태왕’이란 의미를 잘 알아야겠습니다.
 

(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