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체이탈화법'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체이탈화법이 무엇인고 하니, 행위의 주체자가 책임 회피를 위해 '자기'라는 주어를 빼고 남의 이야기를 하듯 던지는 말이다. 유체이탈(幽體離脫)은 영혼이 자신의 신체를 빠져나온 상태에서의 감각 체험을 일컫다.

쉽게 말해, 자기 집에 불이 나고 있는데 마치 옆집 불난 듯이 "평소에 불 관리를 제대로 했어야지 쯧쯧"하고 말하는 식이다.

▲ 최근 SNS를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 발언 번역기'라는 콘텐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박근혜 번역기' 이미지 캡쳐]

유체이탈화법이 화제를 모으게 된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큰 몫을 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있었던 것인데, 최근 메르스 사태 이후의 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해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메르스 불안함에 대해 정부는 대처방안을 밝혀야 한다."
- 6월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정부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선도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심각한 것은 빨리 국민들께 알려 나갔으면 한다."
- 6월 16일 대모초등학교를 방문해 학부모들을 만나

"(정보가) 전부 좀 투명하게 공개됐으면 한다.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주시기 바란다."
- 6월 17일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위에 추려진 세 가지 발언을 보면 저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학부모의 말, 혹은 일반 시민의 말이 아닐까.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점, 정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저 말이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대한민국 온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 정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정부에게 요구사항을 말하는 식이다. 안타깝지만 '유체이탈화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해당 발언의 앞뒤 내용을 모두 찾아보면 박 대통령의 발언은 훨씬 더 다양하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여론은 박 대통령의 모든 발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주어가 빠진 채 책임을 회피하는 인상을 주는 '유체이탈화법'은 심각한 문제다.

망국(亡國)이 되기 전, 모든 사회에는 비평가와 분석가가 늘어나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말인즉슨, 상황에 대해 한 발 비켜선 채로 비평하고 분석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상황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은 국민으로 하여금 대통령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60%를 넘은 것(60.8%)은 연말정산 세금폭탄 여파가 있었던 2월(62.3%) 이후 두 번째다. (리얼미터)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2주 사이 1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과 함께 공감하고 국민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2013년 2월 25일 취임했으니 이제 꼭 임기의 중간 점을 맞았다. 남은 2년 반의 임기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국민은 3인칭 관찰자가 아닌 1인칭의 리더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