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알아서 할게.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어라."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주말에 본가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집에서 '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 괜히 사람 많은 서울역 갔다가 일 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부모님 말씀. 결국 사무실로 향했다.

전철을 타자 쉴새 없이 울리는 속보 알람이 스마트폰을 가만두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3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가 정보 공개를 늦춘 탓에 초기 방역 정책의 실패를 불러왔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은 속보로는 강원도에서 자택에 격리되었던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다음 속보는 7세 초등학생이 3차 검사 결과 다시 '음성'이 나왔다는 소식이, 그다음으로는 사설 구급차 운전자인 70대가 3차 감염자로부터 옮아 지역사회 내 4차 감염 가능성에 대한 속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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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나와 사무실로 걸어가는데 거리가 한산하다. 거리에서는 주말의 북적거림을 찾을 수 없다. 원래도 주말이면 직장인들이 빠지면서 한산해지곤 하지만 주말이 주는 생동감은 있었는데,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

이번 주 들면서 약속 취소, 모임 연기가 줄을 이었다. 뭐가 그리들 바쁜지 고르고 골라 겨우 맞춘 약속이었는데 말이다. 중요한 자리라 기대하고 있던 모임은 '연기'라고는 하는데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덕분에 옆길로 새지 않고 이번 주는 사무실과 집만 오갔다.

2015년 6월이 이렇게 지나간다. 내 작은 일상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이 마비되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에 관심을 갖는 국민은 별로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위원장으로 내세워 당 혁신에 나선다는 이야기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 분이 그저께 별세하였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콸콸 나오는 도시 사람들은 지금 우리나라에 124년 만의 대가뭄이 왔다는 것도 잘 모른다.

메르스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정부의 초동 대처 실패가 야기한 사태라고 보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이미 국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확진 환자는 138명, 격리자만 해도 4천 명을 넘어섰다.

메르스 사태가 하루빨리 마무리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방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메르스가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의 의미를 알아차리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