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모님을 도와 분갈이를 한 적이 있다. 덥다고 하기는 이른 5월이었지만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고 분갈이는 끝이 없었다. 노상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 쳐다보고 사는 언니인지라 간만의 몸으로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슨 화분이 이렇게 많으시냐", "이제 좀 줄이시라"는 이야기를 쉼 없이 내뱉다가 이내 단순하지만 매 순간이 다른 꽃과 나무를 만나는 분갈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순간적으로 언니 얼굴에 묘한 미소가 피어나는 걸 느꼈다. 어떤 이유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뒤로 언니는 흙 만지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마음이 아주 좋았던 느낌이 지금도 선명하다.

▲ 《마음을 가꾸는 정원》자키아 로렌 머레이 저, 한문화

《마음을 가꾸는 정원》(자키아 로렌 머레이 저)은 언니의 그 '좋았던 느낌'을 정원 가꾸기가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완전한 몰입을 하면 몸은 피로할 수 있지만, 정신은 엄청난 이완과 해방감을 경험한다는 것. 조금 더 말하자면 이는 동(動)적인 명상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언니를 사로잡은 것은 그 유명한 틱낫한 스님의 추천사도, 예쁜 표지(솔직히 표지를 비롯해 책 자체가 상당히 예쁘기는 하다)도 아니었다. ‘정원에 들어서며’ 갖게 되는 마음가짐에 대한 부분이었다.

“...뚜렷하든 사소하든, 정원으로 가는 문턱은 자신에게로 돌아오기에 충분한 공간을 선사한다. 그곳은 목표에 매달린 채 속도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의 습관을 내려놓는 장소이다. 속도를 늦추고 ‘지금 이 순간’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마음을 살피며 이 문턱을 넘음으로써 일상이 떨치고, 정원이 선사하는 안식을 맞이한다.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온 것이다. 멈춰 서서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느끼고, 아름답고 우아한 꽃과 나무를 관찰하자.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 깊이 존재하게 된다...” (16~17쪽)


이 책은 가드닝(Gardening)을 이야기한다. 잡초를 다루는 법, 가지치기에 대한 이야기, 흙을 마주하고 퇴비를 만드는 방법 등 정원을 가꾸기 위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가드닝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하나의 수단이다. 책은 흙을 통해 생명의 풍요로움과 대지의 생명력을 느껴보라 한다. 또한 들숨과 함께 가지치기를 하며 낡은 버릇과 집착을 버리고 새 생명이 움트고 꽃피울 자리를 마련해두라 말한다.

정원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법을 배우고, 집착 없이 자유롭게 진정한 자신이 되는 이치를 알아차린 저자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큰 삶’을 제안한다.

“...나는 두려움 없이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살피며 가꾸는 삶에 자신을 모두 바친다. 모든 생명과 내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이해한다.
큰 삶을 산다. 숨을 내쉬며, 모든 생명에 현재의 내 존재와 마음, 사랑을 넉넉하게 바치는 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존재가 동물, 식물, 무기물 등 세상 모든 곳의 모든 존재 안에서 사랑을 통해 지속된다...”
(197쪽)


그래, 매일 아침 시간에 쫓기며 일어나 붐비는 전철을 타고 가서 작은 모니터 속 세상에서 오로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살지만 그래도 이 모든 삶이 사랑이렷다. 다시 한 번 큰 숨을 들이켜 보고, 다시 한 번 큰 숨을 내쉬며 언니는 혼자가 아님을, 언니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다시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