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즉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종종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는 중요치 않다. 내게 있어 그것은 문학이 내게 주지 못했던 예술의 위안 속에 새롭게 침잠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펠릭스 브라운(Felix Braun)에게 보낸 편지(1917) 중에서

나이 마흔에 잡은 붓, 그에게 하얀 캔버스는 생의 고통을 풀어내는 고백의 공간이자 삶의 위안을 얻는 안식처였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놓고 조국 독일과 겪어야 했던 갈등, 부친의 사망, 아내의 정신분열증세와 아들의 입원 등 여러 상황으로 정신적 위기를 맞은 그에게 그림은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와도 같았다.

▲ 그림을 그리고 있는 헤르만 헤세 [사진제공=본다빈치]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유려한 문장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킨 인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 그에게는 소설가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바로 '화가'이다. 헤세는 스스로 자신을 화가라 칭하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들은 후대에 남아 많은 이들에게 따뜻함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헤세의 그림은 일본에서 1976년부터 199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순회전을 가질 만큼 인기가 높았다.

국내에서도 헤세의 명작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명작을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한 신개념 컨버전스 아트 전시인 <헤세와 그림들 展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서울시 용산구)에서 5월 2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린다.

▲ 헤르만 헤세가 그린 그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호수 골짜기 위쪽 꽃이 심어진 정원, 포도나무가 있는 정원 계단,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정원사 헤세 [사진제공=본다비치]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과 관련된 채색화, 초판본, 사진, 유품 등 영국 로이드보험사 가치평가 추정액 1,000억 원 상당의 작품 중 5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마의 산>으로 알려진 소설가 토마스만과 프랑스 아카데미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로맹 롤랑과의 서신집, 오페라의 거장 슈트라우스가 헤세에게 바치는 교향곡과 그의 작품을 영화화하여 히트 친 <황야의 이리> VOD 테이프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헤세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이 함께 진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은 '헤세의 초대', '방황/고통', '우정/사랑', '치유/회복', '평화/희망' 등 총 5개의 테마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는 8월 30일까지 '첫 번째-헤세의 초대', 11월 1일까지 '두 번째-헤세의 가을' 등 두 개의 버전으로 진행된다. 전시회 감상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입장마감 오후 5시)까지 할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전시 관련 문의는 전화(1661-0553)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