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칠곡군 국조전이다. 부지만 1천여 평에 달한다(사진=윤한주 기자)
 
조용승 독립운동가…옥중에서 단군의식 가져
현 국조전은 새롭게 지어진 것
 
전국의 단군전을 찾기 전에 시ㆍ군지(市郡誌)부터 살펴본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국조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칠곡군지(誌)』는 목차를 볼 필요도 없었다. 맨 앞에 칠곡을 대표하는 유물 사진 중에서 국조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조전은 국보나 보물, 사적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 지역민의 자긍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호국의 고장이라고 자랑하는 칠곡군을 경상북도에서 가장 먼저 찾은 이유다.
 
자고산에 자리하다!
 
서울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3시간 30분을 달리면 왜관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국조전까지는 자동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다. 택시를 세워 ‘국조전’이라고 말하면 모르는 기사가 없다. 어느 기사는 “국조전처럼 큰 성전도 이곳에 없지요”라고 말했다. 칠곡군청 앞 삼거리의 도로 안내판에 국조전이라고 쓰여 있다. 육교에 올라서면 자고산(鷓鴣山, 303m)에 자리한 국조전이 보인다. 부지만 1,000여 평에 달한다. 국조전은 1993년 11월 단민회가 도비(2억)와 군비(2억5천), 성금(2억)을 보태 6억5천만 원으로 지었다. 이듬해 12월 칠곡군에 기증하고 1997년부터 단민회가 위탁 관리한다. 역사가 짧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옛 국조전이 있었다. 그에 관한 사진이나 자료는 단민회 측이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 당시의 회원들도 고인이 됐다. 연구자료와 신문기사로 국조전 설립 이야기를 만나본다.
 
이강오 전북대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국조전의 탄생은 독립운동가 조용승(曺瑢承) 선생과 관련이 깊다. 그는 1891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3·1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가 단군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만주로 건너갔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신의주 감옥에 투옥됐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옥중에서 한민족의 재기는 전 민족의 주체의식과 단결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국조단군성조의 숭배로서 민족정신의 통일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는 왜관에서 대서업(代書業, 남을 대신하여 관청 행정이나 법률 행위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여 주고 보수를 받는 직업)을 경영했다. 이즈음에 지리산 기슭에 단을 만들고 단군에 대한 기도수련을 시작했다. 이것은 단군신앙에서 민족통일의 계시적 방안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국조전을 창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조용승 선생의 공덕비(사진=윤한주 기자)
 
국조전의 건립은 한국전쟁 이후다. 조 선생은 한국전쟁 때 민족분열의 참상을 뼈저리게 느낀 것. 이어 민족정신의 통일과 단결을 위한 운동으로 국조 단군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수국회(守國會)를 발기했다. 이 운동은 칠곡을 중심으로 대구(大邱), 성주(星州), 선산(善山), 김천(金泉), 고령(高靈) 등지에 걸쳐 동지를 규합하여 어느 정도의 지방 조직까지 갖췄다고 한다. 1955년에 동지 장경래(張景來), 이수기(李壽基), 심정변(沈貞變) 등과 협의해서 단민회(檀民會)를 조직했다. 관의 협력을 얻어 왜관을 거점으로 하는 국조전건립기성회를 조직했다. 군민들의 성금을 거두어 1957년에 왜관읍 석전동에 국조전의 본관과 정문을 준공했다.
 
독립수호비문이 세워져
 
이는 단민회에서 밝힌 연혁과 다르다. 단민회 측은 창립연도를 한국전쟁 중인 1951년 3월 24일로 보고 있다. 이어 국조전 완공은 1961년 2월 20일이라고 했다.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573-8번지이고 규모는 대지 400평이다. 본전과 삼문 관리사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아무튼 2개의 스토리가 있는 셈이다. 
 
이 교수는 “(조용승은) 그 후 회의실과 위토답(位土畓,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는 논)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으나 간부들의 의견 불합으로 중단되었다”라며 “1965년에 이우택(李愚澤) 군수의 협조로 자금을 모으고 회의실이 세워졌다. 단군전 내에 독립수호비가 세워졌다. 그 뒤에도 조 씨는 위토답의 설치에 부심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66년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라고 말했다. 
 
국조전에는 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기공비(紀功碑)가 있다. 또 친필이 유일하게 남은 독립수호비문이 있다. 선생의 호가 성당(星堂)이라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됐다.
 
▲ 국조전 독립수호비문(사진=윤한주 기자)
 
1. 독립수호: 자손들이여, 천지와 같이 이 나라에 살 것이로다. 그 끝까지 이 나라 독립을 수호하리.
2. 민족단결: 나라를 위하여 한마음 단결하리.
3. 정신통일: 정신통일하여 그 정신으로 나라 독립을 수호하고 나라 부(富)하고 민강(民强)하리.
4. 도덕달성: 홍익인간의 대도(大道)로 만방인류(萬邦人類)를 구하고 나라 빛내리.
 
선생의 후손으로는 2명의 딸이 있었다. 맏딸인 조윤남 씨는 고인이 됐지만 생전에 봉사상을 받은 적이 있다. 동아일보 (1988년 11월 1일자)에 따르면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제24회 용신봉사상에 조윤남 대한적집자사 경북지사 칠곡부녀회장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조 씨는 독립운동을 했던 선친께서 칠곡군에 국조전을 세운 인연으로 칠곡에 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발전과 불우이웃돕기에 반평생을 보냈다. 국조전과 관련해서 “선친이 세운 단군사당인 국조전을 보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민회 측은 “1989년에 이르러서 국조전은 주위에 민가가 많이 건축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진입로가 좁아 국조전 건물이 협소하고 낡았다”라며 “많은 국민이 국조전 이전을 염원했다”라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새 국조전이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편에서 국조전을 지키는 사람들을 소개하겠다.<계속>
 
■ 경상북도 칠곡군 국조전(바로가기 클릭)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15길 20
전화 칠곡군 단민회 054-972-7044
칠곡군 새마을문화과ㆍ관광문화재담당 054-979-6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