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그 자선전을 읽었다. 감흥은? 별로 없었다ㅡ솔직하게, 아주 솔직하게 썼다는 느낌 외에는.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읽고 감동했다. 자기 관리를 이렇게 철저히 하여 큰 업적을 남기다니. 그런 삶을 본받고 싶었다. 밑줄을 긋어 가며 읽었던 그 자서전, 내 곁에 항상 있다. 누구의 자서전이냐고? 미국의 국부(國父) 가운데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의 자서전이다. 피뢰침을 개발한 과학자말이다.
지난해 이 자선전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읽었다. 일지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이 인성영재로 벤자민 프랭클린을 소개하고 국내에 벤자민인성영재학교를 세운 게 시발이었다. 자수성가, 독학으로 성공한 인물, 자기관리를 철두철미하게 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인성영재라니? 왜, 인성연재인가? 의문을 풀고 싶었다.
양초와 비누를 제조하는 아버지는 가난했다. 두 번 결혼하여 아이들을 열일곱이나 낳았다. 벤자민은 열다섯 번째 자녀, 아들로는 막내였다. 아버지는 아이들 배를 굶지 않게 하는 것도 벅찼다. 그래서 벤자민은 공교육은 라틴어 학교 1년밖에 받지 못했다. 열 살이 되면서 아버지 일을 도와 양초를 만들고 비누는 빚었다. 열두 살에는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처지에서도 벤자민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돈이 몇 푼이라도 들어오면 책을 사는 데 모두 썼다. 인쇄소에 들어간 후에는 서점 점원과 친구가 되어 책을 빌려보았다. 저녁에 빌려 밤새 읽은 뒤, 이른 아침에 되돌려주는 생활ㅡ주경야독을 기꺼이 택했다.
그리고 장서가와 사귀고 책벌레를 친구로 만들어 토론을 즐겼다. 만날 수 없을 때는 주장을 글로 써서 보내고 반론문이 오면 다시 반론문을 써서 보냈다. 더하여 문체가 우아한 책을 보고 문장의 요점을 적은 뒤 나중에 요점을 바탕으로 원문 형식과 길이만큼 문장을 만들었다. 열다섯 살에는 형이 발간하는 신문에 익명으로 투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문장력을 쌓을 수 있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벤자민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성공에 빼놓을 수 없는 수단이 되었다.
열여섯 살 무렵에는 채식에 관한 책을 읽고 채식생활을 시작했다. 먹고 마시는 일을 절제하니 머리도 맑아지고 이해력도 빨라졌다. 당연히 공부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다.
벤자민은 1726년 영국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오면서 장래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인생설계’를 적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다. 아주 젊었을 때 인생설계를 짜놓고 노년에 이를 때까지 평생 신념을 가지고 꿋꿋하게 지켰다. 그는 이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이 인생설계는 도덕적 완성을 위한 13가지 덕목으로 나타났다. 그는 절제, 침묵, 질서, 결심,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 13가지 덕목을 정해 매주 한 덕목씩 13주간씩 1년에 네 번 반복해 실천했다.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포기 하지 않고 인격 완성을 위해 실천을 고집했다. 이렇게 하여 습관이 되어 몸에 익었다.
이런 덕목이 몸에 밴 벤자민은 50대의 나이에 정치에 입문하여 30여년 동안 미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미국이 탄생할 때 작성한 매우 중요한 문서 4개에 모두 서명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동맹조약, 영국과 독립전쟁 후 맺은 주권국가 승인조약, 독립선언서, 미국 헌법, 이 4 개에 모두 서명한 사람은 벤자민이 유일하다. 벤자민은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큰 어른이다.

이번에 한문화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새롭게 번역했다. 새 책을 보니 인생완성을 위해 평생을 바르게 살아온 벤자민 프랭클린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생 아들에게도 이 책을 꼭 읽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