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던 집의 화장실이 기억나지 않는다, 거울의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낯설다. 그렇다면 어떤 느낌일까?
전세계에서 강연을 하던 저명한 언어학 교수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 아내로 행복한 삶을 꾸려왔던 앨리스, 어느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것.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유전성 질병이라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발병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그녀가 질병을 맞닥뜨리고서부터 받아들여가는 현실을 잔잔하게 그렸다. 우리네 인생처럼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이 작품은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차이나 타운> 등 화제작 사이에서 입소문 만으로 잔잔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뇌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면서 이제 '뇌'와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그 뇌에 이상이 생기다니. 아마씨 오일과 신선한 채소 등을 먹고 저녁 조깅을 즐기는 등 스스로를 잘 관리해왔던 그녀이기에 더욱 믿을 수 없다.
처음 소식을 접한 앨리스는 "내 일부가 사라지는 느낌", "뇌가 죽어가는 느낌이다"라며 절규한다. 차츰 쪼그라드는 뇌 만큼이나 앨리스의 기억 역시 바스라진다. 언어학 교수였던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딸이 꿈을 이뤄가는 모습조차 타인처럼 바라보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기도 한다.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녀와 가족들은 차츰 담담히, 그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루게릭 투병 생활 중에도 마지막까지 작품을 놓지 않았던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시선과 열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혼자 '상실의 기술'을 습득해야만 하는 환자의 입장을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안 무어의 연기 역시 긴 여운을 남긴다.
스크린을 떠나 자신의 삶을 떠올려보자. 인간으로 태어나, 언젠가는 죽는다. 어떤 이는 몸이 아픈 모습으로, 어떤 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문득 자신이 나이 들어감에 대해 놀랐던 적 있지 않은가? 뇌로 알고는 있다 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낯선 느낌이다.
그렇게 모든 것은 변화한다. 원하는 모습이든 혹은 그 반대이든. 두렵지만, 멈출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앨리스의 말처럼 "순간을 사는 것" 그리고 "나를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매 순간 깨어 자신을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자.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느껴진다면, 이 순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틸 앨리스(still Alice)>가 말하듯, 여전히 살아있으니(still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