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던 집의 화장실이 기억나지 않는다, 거울의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낯설다. 그렇다면 어떤 느낌일까?

전세계에서 강연을 하던 저명한 언어학 교수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 아내로 행복한 삶을 꾸려왔던 앨리스, 어느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것.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유전성 질병이라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발병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그녀가 질병을 맞닥뜨리고서부터 받아들여가는 현실을 잔잔하게 그렸다. 우리네 인생처럼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이 작품은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차이나 타운> 등 화제작 사이에서 입소문 만으로 잔잔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뇌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면서 이제 '뇌'와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그 뇌에 이상이 생기다니. 아마씨 오일과 신선한 채소 등을 먹고 저녁 조깅을 즐기는 등 스스로를 잘 관리해왔던 그녀이기에 더욱 믿을 수 없다.

처음 소식을 접한 앨리스는 "내 일부가 사라지는 느낌", "뇌가 죽어가는 느낌이다"라며 절규한다. 차츰 쪼그라드는 뇌 만큼이나 앨리스의 기억 역시 바스라진다. 언어학 교수였던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딸이 꿈을 이뤄가는 모습조차 타인처럼 바라보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기도 한다.

▲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학회에서 '상실의 기술'을 익혀가야만 하는 자신의 아픔을 담담히 전한다.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녀와 가족들은 차츰 담담히, 그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루게릭 투병 생활 중에도 마지막까지 작품을 놓지 않았던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시선과 열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혼자 '상실의 기술'을 습득해야만 하는 환자의 입장을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안 무어의 연기 역시 긴 여운을 남긴다.

 

스크린을 떠나 자신의 삶을 떠올려보자. 인간으로 태어나, 언젠가는 죽는다. 어떤 이는 몸이 아픈 모습으로,  어떤 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문득 자신이 나이 들어감에 대해 놀랐던 적 있지 않은가? 뇌로 알고는 있다 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낯선 느낌이다.

그렇게 모든 것은 변화한다. 원하는 모습이든 혹은 그 반대이든. 두렵지만, 멈출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앨리스의 말처럼 "순간을 사는 것" 그리고 "나를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매 순간 깨어 자신을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자.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느껴진다면, 이 순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틸 앨리스(still Alice)>가 말하듯, 여전히 살아있으니(still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