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1300호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발해 1300호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 민성욱 박사
  • culture@ikoreanspirit.com
  • 승인 2015.05.11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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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 칼럼 ㅡ 『국학을 통해 바라본 우리 역사』71

1997년 12월 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발해 1300호’, 즉 발해 해상항로 학술뗏목탐사대가 역사적인 그 출항을 알리고 있었다. 장철수 대장, 이덕영 선장, 이용호 대원, 임헌규 대원 등 4명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길이 15m, 너비 5m의 뗏목에 몸을 싣고 1300년 전 발해인이 해상 교역을 했던 발자취를 찾아 블라디보스톡 항을 출발하였던 것이다.

▲ 민성욱 박사
그들은 출발에 앞서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발해는 고구려의 옛 영토와 바다를 통해 국가의 경영을 이룩한 해양국가 였다. 학문 연구에 있어 육지에서는 유적이나 유물을 통해 자료를 구할 수 있지만 바다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우리가 찾으려는 발해의 옛길 항로는 해류를 통해 해상 활동을 했던 발해인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으로, 발해사 복원에 조그만 기여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이 출발한 지 25일째인 1998년 1월 24일, 일본 오키섬 근해에서 폭풍우를 만나 전원 산화하였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다. 발해 1300호는 왜 추운 겨울철에 항해했어야 했나?  그리고 그들의 도전은 무모한 도전이었는가? 아니면 역사의 진실에 충실하기 위함 이었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들의 항해는 성공했는가? 아니면 실패했는가? 그들의 입으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남겨진 흔적과 자취로 그들이 왜 그토록 발해를 꿈꾸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질문들에 공통적인 답변은 그들은 역사의 진실에 지극히 충실했고, 발해인들의 옛 해상항로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발해1300호는 12월 31일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크라스키노 항구를 출항했다. 1300년 전 발해국에서 일본으로의 뱃길 중 일본 도착일을 고려할 때, 현재 확인되는 34회 중 무려 19회가 음력 11월부터 1월 사이였다. 즉, 일본으로의 한 달 미만의 항해기간을 고려하면 절반이상이 겨울철에 떠난 항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발해1300호는 이렇듯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출항시기를 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왜 발해국과 발해1300호는 겨울철 항해를 택했는가?

그것은 겨울철에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부는 '북서계절풍'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발해로 되돌아갈 때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부는 '남동계절풍'을 이용하기 위하여 여름철 항해를 선택하게 된다.

바다에 묻은 발해의 꿈

바람과 해류에 의지하여 겨울철 동해를 횡단한 발해1300호는 울릉도 주변해역을 거쳐 일본 오키섬 연안에 도착하였으며, 육지 접안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항해과정 중 최악의 해상기상조건을 접하면서 탐사대원 4명 전원이 구조과정 중 사망하였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목숨을 건 발해 1300호의 항해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발해1300호의 항해목적은 발해건국 1300주년을 맞이하여 발해해상항로의 실증적 복원과 발해인들이 일본으로 건널 때 울릉도 및 독도가 항해의 중간기착지로 활용했음을 증명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하여 기계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바람과 해류에 의존한 뗏목을 이용해 동해를 건넜으며, 겨울철인 12월과 2월 사이에 일본으로 건넜던 발해인들의 항로를 재현하기 위해 겨울철 항해를 선택하였다. 발해는 34차례에 걸쳐 일본에 공식사절단을 파견하였고, 발해인들이 일본에 도착하는 시기는 12월과 2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다시 발해로 귀국하는 시기는 여름철에 집중되어 있었다. 발해 중대성 문서에는 “바람을 점치고 때를 기다려 출항한다.”는 기록이 있어, 발해인들이 일본으로 건널 때는 겨울철의 북서계절풍을 이용하였으며, 발해로 다시 귀국할 때는 여름철의 남동무역풍을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 1300호 뗏목의 2개의 돛에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비천상과 치우천황상을 그렸다. 이것은 한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알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발해1300호의 대원들은 그들이 남긴 항해일지와 일생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여러 메시지를 남겼다.  해양 개척을 위한 진취적 기상과 남북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 진실과 화해를 바탕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 이것이 바로 발해1300호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도대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발해는 어떤 의미가 있나?

발해는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에서 만주 및 연해주로 역사의 인식과 지평을 넓혔다는데 그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초기의 수차례의 선박 전복과 표류 그리고 발해사신까지 희생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식사절단만 34차례에 걸쳐 동해를 건넌 발해인들의 탐험 및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발해는 해동성국 이라는 칭호까지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발해 1300호는 거친 동해바다를 건너는 도전정신을 통하여 발해인들의 자긍심과 탐험정신을 한국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비록 연안에 좌초되어 대원 전원이 사망하였지만 발해1300호는 발해에 대한 우리의 잊혀진 인식들을 일깨우고 한국사의 일부로서 발해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바다에서 민족의 지혜를 발견한 발해인, 그리고 1300년 전의 발해인들을 찾아 떠난 발해1300호.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는 발해와 발해1300호가 해양에 대한 진취적 기상을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천문을 이해하고 바람을 이해했던 발해인들, 발해인들의 항해를 보다 역사적 진실과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서 재현하고자했던 발해1300호,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와 바다에 남겨진 그들의 흔적과 자취들을 통해 남겨진 우리들이 발해사와 발해정신에 관심을 가질 때 발해 1300호의 항해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오늘 그리고 내일도 또 다른 한국인들의 도전과 창조정신을 일깨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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