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태어났니?”
거침없는 대사 한 마디가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왜 태어났니?” 그 말은 영화 ‘차이나타운’ 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화두이다. 누구나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부여된 생명, ‘차이나타운’은 살아있음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가치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한 아이 ‘일영’(김고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이는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엄마’(김혜수)라 불리는 여자를 만난다. 영화의 주요 공간이 되는 차이나타운은 이민자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까지 이방인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엄마는 일영을 비롯해 떠도는 아이들을 자신의 식구로 만들어 차이나타운을 지배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는 일영에게 “쓸모없으면 너도 죽여버린다.” 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일영은 엄마의 명령에 따라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하며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일영은 엄마의 돈을 빌려 간 악성 채무자의 아들 석현을 만난다. 그는 일영에게 엄마와는 달리 다른 따뜻하고 친절한 세상을 보여준다. 일영은 처음으로 차이나타운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런 일영의 변화를 감지한 엄마는 그녀에게 위험천만한 마지막 일을 준다. "증명해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무자비하고 비정한 엄마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일영은 엄마에게 울면서 묻는다. “엄마, 이제 나 버릴 거예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들의 절규가 스크린을 뜨겁게 달군다.

 

차이나타운을 보면서 ‘인간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쓸모 있음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쓸모 있음’이란 엄마의 지시를 완벽하게 해내는 걸 말한다. 그러나 일을 성공시키는 것만이 인간의 가치의 전부일까. 

기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영화 속 인물들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그녀의 식구들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물든 요즘 가족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되어버린 아빠, 성공하는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잔소리하는 엄마,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 모두 사회 속에서 쓸모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서로의 존재감을 잊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엄마와 식구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식사 시간은 마치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과 똑같았다. 잔인한 삶의 현장을 잊은 듯 이 장면은 따듯하고 밝게 표현된다. 그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내가 돌아갈 집과 함께 즐겁게 식사할 가족들, 그리고 비록 쓸모없더라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엄마’가 아니었을까.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족은 서로에게 의미 있는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