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설립된 서울 구로공단은 '노동'의 현장인 동시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과 애환이 서린 처절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또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격렬한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때 '가리봉오거리'로 불렀던 '디지털단지오거리'는 이 모든 현장을 지켜본 증언자로서, 공장, 벌집, 가리봉시장, 야학 등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생활현장을 이어주는 중심지였다. 산업화와 민주주의라는 한국현대사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억척스레 삶을 일궈가던 구로공단 여공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곳.
1886년,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노동절의 유래했다. 그로부터 100년 뒤 우리나라에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연대투쟁에 돌입, 해방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으로 전국을 뒤흔들어놓은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구로동맹파업'(1985)이 있다.
반세기가 지나 과거 산업화의 역군이라는 명성은 사라지고 '디지털'이라는 이정표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노동자 16만여 명의 삶을 품은 거대한 산업단지이며 이들의 밤낮 없는 땀과 노력이 ‘디지털’이라는 첨단을 지탱한다. 치열하고 뜨거운 삶의 장소, '구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가리봉오거리에서 디지털단지오거리, 구로공단에서 G밸리까지, 5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구로공단 주요장소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할 기획전 <가리봉오거리>展이 4월 24일(금)부터 7월 12일(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가리봉동 벌집에서 직접 철거해온 문짝을 활용하는 등 노동자들의 삶을 증언하는 생생한 자료가 총 망라되어 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공개한 다양한 생활사 자료와 사진, 인터뷰를 한데 모은 것 또한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다.
전시는 ▴1부 구로공단 속으로 ▴2부 ‘G밸리’라는 오늘과, ‘구로문화공단’ 등 지역 내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협업으로 구로공단을 예술과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는 ▴‘구로아날로그단지’ 만들기로 구성된다.
구로공단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다! - 1부 구로공단 속으로
1부 <구로공단 속으로>에서는 1964년 구로공단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함께 구로공단 전성기 모습이 전시된다. 공장, 벌집, 가리봉시장, 야학, 노동운동 등 구로공단 사람들의 주요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조장 임명장’ ‘근속상’ 등 구로공단 노동자가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소장품을 비롯해 ‘생산성향상운동 반대 유인물’ 등 공장 생활을 증언하는 다양한 자료를 선보임으로써 라인별로 밤낮 없이 돌아갔던 공장의 고된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1970~90년대 의류, 전자, 인쇄제품 등 구로공단 소재 업체가 생산한 상품군이 전시돼 구로공단이 경공업 생산기지로서 톡톡한 역할을 했음을 잘 알 수 있다.
대개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은 2~3평 정도 되는 쪽방이 30~40개씩 모여 있는 ‘벌집’에 살았다. 오늘날 이런 벌집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지만 몇몇 주택이 여전히 남아 중국동포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곧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가리봉동 133-52번지에서 문짝을 직접 철거해 와 벌집의 전모를 재현했고 여공들이 살던 방의 모습을 일부 재현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맞닥뜨린 여공의 설렘과 두려움, 고단함을 공감각적인 연출하여 당시 삶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화려한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는 아웃렛사거리는 '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대우어패럴이 있었던 노동운동의 역사적 현장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소장한 구로공단 관련 노동운동의 방대한 자료들과 함께 서통(가발업체)에서 활동했던 한 노동운동가의 개인 소장 자료(일기, 수감 당시의 편지 등), 경찰서의 조사기록(복제) 등을 선보인다.
또, 학생운동, 노동자문예운동 및 노동자선교 등 80년대에 일었던 노동자 연대활동도 같이 살펴보고 엄혹했던 시기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고된 과정이 생생한 영상과 함께 전시된다.
다방, 분식점 등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기억하는 추억의 장소를 방문해 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묘미다. ‘나포리다방’ ‘백양양품’ 등 현재도 그 상호를 이어가고 있는 가리봉동의 명소가 전시실에 실감나게 재현된다. 또한 노동자들이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던 공간인 야학과 산업체특별학급도 전시의 주요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오피스타워와 그 속의 사람들 - 2부 ‘G밸리’라는 오늘
1997년 구로첨단화계획 이후 구로공단은 지식기반산업 위주로 업종 전환을 거쳐 2000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새 이름을 갖게됐고, 현재는 서울의 대표 오피스타운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피스타워의 안과 밖을 입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맵핑영상을 선보이며 다양한 시선의 사진을 통해 디지털단지의 전모를 볼 수 있다.
여공의 쉼터였던 가리봉동은 현재 울긋불긋한 중국어 간판이 손짓하는 중국동포타운으로 변모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고국으로 이주한 이들은 가리봉동을 떠난 여공들을 대신해 이 지역의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구로공단의 대규모 봉제업이 점차 사라지면서 인근 독산동에 소규모 하청작업장이 생겨났다. 의류브랜드 본사에서 디자인된 옷은 독산동 큰길 및 골목의 공장에서 제작돼 G밸리의 패션아웃렛들을 비롯해 전국으로 유통된다. 옷 하나가 독산동에서 제작돼 G밸리로 유통되기까지의 과정을 실물 의류와 제작영상을 통해 선보인다.
‘노동’과 ‘예술’의 연대 – ‘구로아날로그단지’ 만들기
이제 구로공단은 과거가 되었지만, 이를 새로운 시선으로 고민하고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다양한 작업들도 있다. 구로문화공단,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구로는예술대학, 금천미세스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그간 생산해낸 재치있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