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설립된 서울 구로공단은 '노동'의 현장인 동시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과 애환이 서린 처절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또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격렬한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때  '가리봉오거리'로 불렀던 '디지털단지오거리'는 이 모든 현장을 지켜본 증언자로서, 공장, 벌집, 가리봉시장, 야학 등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생활현장을 이어주는 중심지였다. 산업화와 민주주의라는 한국현대사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억척스레 삶을 일궈가던 구로공단 여공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곳.

▲ 1976년 구로공단 3단지. <사진=국가기록원>

  1886년,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노동절의 유래했다.  그로부터 100년 뒤 우리나라에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연대투쟁에 돌입, 해방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으로 전국을 뒤흔들어놓은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구로동맹파업'(1985)이 있다.

반세기가 지나 과거 산업화의 역군이라는 명성은 사라지고 '디지털'이라는 이정표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노동자 16만여 명의 삶을 품은 거대한 산업단지이며 이들의 밤낮 없는 땀과 노력이 ‘디지털’이라는 첨단을 지탱한다. 치열하고 뜨거운 삶의 장소, '구로'는 여전히 살아 있다.

▲ 가리봉동 벌집. <사진=서울역사박물관>

 가리봉오거리에서 디지털단지오거리, 구로공단에서 G밸리까지, 5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구로공단 주요장소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할 기획전 <가리봉오거리>展이 4월 24일(금)부터 7월 12일(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가리봉동 벌집에서 직접 철거해온 문짝을 활용하는 등 노동자들의 삶을 증언하는 생생한 자료가 총 망라되어 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공개한 다양한 생활사 자료와 사진, 인터뷰를 한데 모은 것 또한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다.

 전시는 ▴1부 구로공단 속으로 ▴2부 ‘G밸리’라는 오늘과, ‘구로문화공단’ 등 지역 내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협업으로 구로공단을 예술과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는 ▴‘구로아날로그단지’ 만들기로 구성된다.

구로공단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다! - 1부 구로공단 속으로 

1부 <구로공단 속으로>에서는 1964년 구로공단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함께 구로공단 전성기 모습이 전시된다. 공장, 벌집, 가리봉시장, 야학, 노동운동 등 구로공단 사람들의 주요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 전시장 전경.

 ‘조장 임명장’ ‘근속상’ 등 구로공단 노동자가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소장품을 비롯해 ‘생산성향상운동 반대 유인물’ 등 공장 생활을 증언하는 다양한 자료를 선보임으로써 라인별로 밤낮 없이 돌아갔던 공장의 고된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1970~90년대 의류, 전자, 인쇄제품 등 구로공단 소재 업체가 생산한 상품군이 전시돼 구로공단이 경공업 생산기지로서 톡톡한 역할을 했음을 잘 알 수 있다.
▲ 가리봉동 벌집 재현. <사진=서울역사박물관>

 대개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은 2~3평 정도 되는 쪽방이 30~40개씩 모여 있는 ‘벌집’에 살았다. 오늘날 이런 벌집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지만 몇몇 주택이 여전히 남아 중국동포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곧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가리봉동 133-52번지에서 문짝을 직접 철거해 와 벌집의 전모를 재현했고 여공들이 살던 방의 모습을 일부 재현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맞닥뜨린 여공의 설렘과 두려움, 고단함을 공감각적인 연출하여 당시 삶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여공의 방 연출.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지금은 화려한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는 아웃렛사거리는 '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대우어패럴이 있었던 노동운동의 역사적 현장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소장한 구로공단 관련 노동운동의 방대한 자료들과 함께 서통(가발업체)에서 활동했던 한 노동운동가의 개인 소장 자료(일기, 수감 당시의 편지 등), 경찰서의 조사기록(복제) 등을 선보인다. 
또, 학생운동, 노동자문예운동 및 노동자선교 등 80년대에 일었던 노동자 연대활동도 같이 살펴보고 엄혹했던 시기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고된 과정이 생생한 영상과 함께 전시된다.

 다방, 분식점 등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기억하는 추억의 장소를 방문해 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묘미다. ‘나포리다방’ ‘백양양품’ 등 현재도 그 상호를 이어가고 있는 가리봉동의 명소가 전시실에 실감나게 재현된다. 또한 노동자들이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던 공간인 야학과 산업체특별학급도 전시의 주요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오피스타워와 그 속의 사람들 - 2부 ‘G밸리’라는 오늘

 1997년 구로첨단화계획 이후 구로공단은 지식기반산업 위주로 업종 전환을 거쳐 2000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새 이름을 갖게됐고, 현재는 서울의 대표 오피스타운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피스타워의 안과 밖을 입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맵핑영상을 선보이며 다양한 시선의 사진을 통해 디지털단지의 전모를 볼 수 있다.

▲ 오늘의 G밸리 코너.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여공의 쉼터였던 가리봉동은 현재 울긋불긋한 중국어 간판이 손짓하는 중국동포타운으로 변모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고국으로 이주한 이들은 가리봉동을 떠난 여공들을 대신해 이 지역의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구로공단의 대규모 봉제업이 점차 사라지면서 인근 독산동에 소규모 하청작업장이 생겨났다. 의류브랜드 본사에서 디자인된 옷은 독산동 큰길 및 골목의 공장에서 제작돼 G밸리의 패션아웃렛들을 비롯해 전국으로 유통된다. 옷 하나가 독산동에서 제작돼 G밸리로 유통되기까지의 과정을 실물 의류와 제작영상을 통해 선보인다.

‘노동’과 ‘예술’의 연대 – ‘구로아날로그단지’ 만들기

 이제 구로공단은 과거가 되었지만, 이를 새로운 시선으로 고민하고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다양한 작업들도 있다. 구로문화공단,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구로는예술대학, 금천미세스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그간 생산해낸 재치있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2015년 G벨리. <사진=서울역사박물관>